北민주화 없이 동북아 ‘세력균형’ 가능하나?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 판도는 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한과 책임을 다해 나가고자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의 연설은 ‘원론적 수준’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한미일 남방(南方) 3각동맹’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북아시아 질서는 냉전시대에 만들어졌던 것”이며, “우리가 언제까지 그 틀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배경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노무현 발언 ‘북방 3각동맹’ 강화시킬 수도

이 말의 본 뜻을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남방(南方) 3각과 북중러 북방(北方) 3각이 마주서 있는 현재의 세력판도를 바꾸겠다는 의미라면 중대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판도의 변화가 한국이 한미일 남방 3각 구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이 담긴 연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를 단순화하여 본질에 접근해 보자.

한반도를 둘러싸고 형성된 한미일 3각과 북중러 3각의 대립 구도를 바꾸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매우 중대한 일이며 또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남방 3각동맹을 약화시키고 북방 3각 동맹을 강화해주는 방향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 방향으로 바꿀 것인가에 있다.

남방 3각동맹에 얽매이지 않고 균형자가 되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남방 3각동맹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한미일 3각동맹에 얽매이지 않게 될 경우, 남방 3각동맹을 약화시키고 북방 3각동맹을 상대적으로 강화시켜주는 방향으로 동북아 세력 판도가 바뀌게 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김정일 정권 교체되어야 세력균형 가능

냉전 해체 이후 찾아온 21세기가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중대한 숙제는 한반도 통일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가장 중요하고도 선차적인 것은 북한의 변화다. 북한의 변화, 즉 개혁과 개방을 촉진하는 가장 ‘솔직한’ 해결책은 김정일 정권을 민주적인 정부로 교체하는 것이다.

북한의 민주화를 한반도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 판도를 바꾸는 것도 결국 북한의 민주적인 변화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의 이익과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는 목표와 전략을 상실한 채 그저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한과 책임’이라는 당위적 ‘개념’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북한의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때다.

현 단계에서 한국 정부가 선택해야 할 외교 및 대북전략의 핵심은 한국이 남방 3각동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북방 3각동맹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광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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