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민주화 깃발 꽂을 때 평양에 보내드릴것”

“지루한 밤은 가고 새 아침은 밝아온 듯 하건만/지평선에 보이는 검은 구룸이 다가오는구나/ 영원한 밤의 사절이 찾아오는구나/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이 세상 하직할 영이별 시간이라고…”(故황장엽 위원장 유작시 ‘이별’中)



故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전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이 14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300여명의 조문객이 참여한 가운데 통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황 위원장을 보내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조사와 추도사가 이어져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박관용 전 의장은 조사(弔詞)에서 “2천300만 동포들을 노예로 만들고 ‘3대 세습’으로 전 인류를 우롱하는 용서 못할 정권이 살아 있는데, 선생님은 왜 바삐 떠나려 하시냐”라며 애통함을 토로했다.



박 전 의장은 “선생님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셨다”면서 “김정일 독재정권은 수백 명의 암살조를 보내고, 탱크를 동원해 대한민국 영사관으로 돌진하려 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김영삼 대통령은 선생님을 끝까지 안전하게 모셔오기 위해 중국 지도부와 살얼음판 협상을 벌였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신 후 북한의 전체주의 세습독재정권의 진상이 만천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다가올 북한 세습정권의 종말도 사실상 선생님의 한국망명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황 선생님의 놀라운 시대 통찰력과 한반도 평화통일전략은 안타깝게도 빛을 보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10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故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의 영결식이 14일 오전 서울 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김봉섭 기자
그는 “‘김일성 광장’이 ‘평양 민주광장’으로 바뀌는 그날, 지금 선생님께서 들고 계시는 ‘북한민주화의 깃발’이 ‘평양 민주광장’에 힘차게 꽂히는 그날, 그 새벽에, 저희들은 선생님의 지금 이 영정을 다시 모시고 비로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7천만 추모객이 모두 모여, 통일의 노래를 부르는 그날, 선생님 ,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으시며 7천만 송이 국화꽃을 밟으시며 웃는 얼굴로 편안히 천국의 계단을 오르시라”고 추도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추도사에서 “2010년 10월 10일, 우리는 일신의 안위와 생사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의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큰 별을 잃었다”며 “그토록 바라셨던 통일과 북한 민주화의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외로운 삶을 마감하신 선생님의 영전에 서니 비통함과 황망함을 이루 가눌 길이 없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이 대표는 “선생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인류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로 인해 “전 세계는 거짓 뒤에 가려진 북한의 실상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황 위원장의 업적을 높였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조명철 전 김일성 대학 교수는 “북에서 들려오는 시대의 고통소리가 얼마나 가슴을 찔렀으면 그 기나긴 밤 초입구에서 외로이 가셨느냐”며 “북한인민을 도탄에서 구원코자 새고 또 새셨던 그 많은 날들이 이제 길을 잃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생전에 스승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우리들의 무지와 안이가 가장 큰 죄로 안겨온다”며 “선생님의 열정에 넘치신 수많은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선생님의 민족애, 인간애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좌절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북한에 자유롭게 발전하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통용되는 그런 사회가 올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 디펜스포럼재단 대표 수잔 숄티 여사도 “황 선생님은 남은 자들의 운명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졌다”며 추도사를 이어갔다.



추도사가 끝난 후 고인이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시 ‘이별’이 낭독됐다. 곧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과 친필 편지, 저작 등을 담은 추모영상이 상영됐으며, 조문객들의 헌화와 분향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한편,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황 위원장은 1997년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북한의 독재실상을 알리며, 북한 민주화를 위한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김정일이 삼남 김정은을 대동하고 전 세계 언론에 후계자임을 공표하던 당창건 기념일 새벽에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마감했다.



황 위원장에게는 12일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으며, 보훈처는 그 다음날 고인의 시신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영결식이 끝난 후 유해는 운구차에 실려 현충원으로 이동해 오후 3시께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