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발사 ‘임박징후’ 포착부터 대응까지

정부는 지난 3일 북한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구체적인 사전 징후를 포착했고, ’7월6일’을 발사 ’D-데이’로 예상한 상태에서 사전 대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일 새벽 대포동 2호 미사일이 발사된 지 12분만인 오전 5시12분에 청와대 안보실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는 사전에 정해진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오전 7시30분 소집됐다.

◆北미사일발사 ‘임박’ 정보 3일 포착 = 정부가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징후를 포착한 것은 지난 3일이었다.

정보당국은 이날 저녁에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정보를 캐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와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의 미사일 발사장에서 급박한 움직임이 포착됨과 동시에 북한이 미사일이 낙하될 것으로 추정되는 동해에 특정해역을 설정해놓고 자국 선박들에 ‘항해금지’를 지시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당국은 정보와 위성사진 판독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심도있는 판단작업에 들어가 이튿날인 4일 오전 청와대에 “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보인다”는 종합적인 상황판단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내용은 즉각 청와대 참모들에 의해 노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 등 안보관련 부처에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음을 발하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 같은 ‘임박’ 판단에 따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5∼10일 예정됐던 중미방문을 전격 연기했다고 한다.

당시 해외출장길에 올라있던 김승규(金昇圭) 국정원장은 이 같은 상황판단이 내려지자 곧바로 귀국을 서둘렀다.

하지만 현지에서 한국행 직항편이 없어 6일 급거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미사일 발사 ’임박’ 정보가 포착된 3일보다 앞선 며칠전 북한이 열흘 이상 대포동 2호 미사일과 관련시설을 뭔가로 덮어놓는 등 장기전에 돌입했을 수도 판단에 따라 해외출장길에 올랐다고 한다.

◆정보 당국의 상황판단 = 정보 당국은 이 같은 정보와 기상상태, 기술적 판단 등을 바탕으로 북한 미사일의 발사시점에 대해서는 실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5일보다는 ’조금 뒤’일 것이라는 쪽에 가까운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기상상태 등을 고려해 대포동 2호 미사일의 발사기지가 있는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의 기상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날씨가 잠깐 좋아질 것이라는 기상정보가 나온 6일이 발사 D-데이가 아니겠냐는 판단도 나왔다.

한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기상청에서도 6일에 북한 발사지역이 ‘잠깐 맑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기 때문에 6일에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이 제안한 비공식 6자회담 개최를 둘러싼 물밑 논의가 진행되는 ’외교적 오퍼레이션(operation)’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실제로 발사를 강행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있었다고 한다.

정보 당국자들은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발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했으며, 실제 발사 가능성은 50대 50으로 봤다는 것.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 비상 태세에는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 미사일 임박 정보가 종합된 4일 언론에 이 같은 상황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발사 시점이 불명확한데다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때문에 유보했다는 후문이다.

◆상식 뒤엎은 北미사일 발사 = 하지만 북한은 통상적인 미사일 발사 실험 시기에 대한 상식을 뒤엎고,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려 미사일을 탐지하고 추적하는데 양호한 여건이 아닌 5일 새벽에 정부 예상보다 빨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게다가 시험 발사라고 하면 관측을 위해 훤한 대낮에 쏘아 올리는 것이 정상인데도 발사 시간대도 어두컴컴한 새벽 시간대를 선택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물론 안보 부처 관계자들은 이 같은 날씨와 시간의 ’악조건’ 속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전격 발사하자 “좀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악조건’에도 불구, 5일 새벽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발사 시점을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 발사 충격을 극대화하려 했다는 관측과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6기의 스커드 또는 노동 미사일이 발사된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소재 발사장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대포동 2호가 발사된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와 달리 시험발사장이 아니라 미사일이 실전배치된 일종의 훈련기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점들 때문에 정부는 당초 깃대령 발사장에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포착됐을 때 실제로 이 지역에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지난 3일 북한의 ‘항해금지’ 하달 정보를 입수한 뒤에도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자 발사가능성을 의심하며 예의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北미사일 발사후 정부 대응 = 북한이 오전 3시32분 깃대령 발사장에서 첫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은 즉각 우리 군 등 정보당국에 의해 확인됐고, 사전에 준비된 대응 매뉴얼에 따라 위기조치반이 가동되고 국방부 등 관계 당국간의 연락 조치가 신속하게 취해졌다.

정보당국을 통해 서주석 청와대 안보수석에게 보고가 이뤄진 것은 오전 4시를 약간 넘은 시각이었다.

미사일 발사후 즉각 상황을 파악한 정보당국은 중·단거리 미사일인데다, 보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해 미사일 발사후 30분 가량뒤 서 수석에게 보고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특히 3시32분에 발사된 첫 미사일은 오래전부터 깃대령에 실전배치된 상황이었고, 사거리가 대포동 미사일처럼 장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보고체계 등이 정보당국 차원에서 관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포동 2호 발사 사실은 당국의 확인 직후 청와대에 신속히 보고됐다.

오전 5시 대포동 2호가 발사되자 정보 당국은 분석 절차를 거쳐 5시10분에 서 수석에게 보고했고 서 수석은 최종 사실확인 절차를 거쳐 2분 후에 노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이어 곧바로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 등 관계 장관과의 전화협의를 거쳐 오전 7시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외교, 국방,통일부 등은 부처별로 새벽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NSC 상임위는 1시간10분간 진행됐으며, 이어 10시10분 서 수석이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 성명도 3일 저녁 정보당국의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 포착 이후 사전에 만들어 둔 것으로, 5일 오전 NSC 상임위 논의와 노 대통령 보고 과정을 거치며 부분적 손질이 이뤄진 뒤 발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성명 발표 50분 후인 11시 노 대통령은 관저에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 한반도 긴장이 조성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내용의 대응 방향을 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응 매뉴얼을 보면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쏠 경우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 주재 회의를 열도록 되어 있어,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며 “늑장대응은 아니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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