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노동당이 90년대 중반이후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줄곧 내세워왔던 실천구호인 ‘자력갱생'(自力更生)에도 최근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나가자’ 제목의 사설에서 “세계 속에 조선이 있다”며 “우리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국제경제 관계를 무시한 채 경제건설을 다그치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자력갱생의 성격이 과거 부족하거나 없는 것에 대해 낡은 기술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무조건 자체적으로 해결하면 됐던 데서 이제는 ‘현대적 과학기술’과 ‘실리’에 기초한 자력갱생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기술을 외면하고 과학에 의거하지 않는 것은 혁명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며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적극 활용하면 그것이 자력갱생”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맨주먹을 가지고 생산과 건설을 다그치던 시기는 지나갔다”며 “자체의 힘으로 한다고 하면서 낡은 기술, 낡은 방법을 답습하고 경험주의에 매달려 현대 과학기술을 무시하는 것은 오늘의 자력갱생과 인연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그러면서 이러한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전략에서, 과학기술 인재 육성.발굴.동원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특히 “자력갱생에서는 실리가 기본”이라는 최신 명제도 제시했다.
이어 “우리 당이 내세운 21세기의 자력갱생은 실리에 기초한 자력갱생”이며 “인민들이 덕을 보지 못하고 국가에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경제사업은 아무런 의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리주의가 어느 개별적 단위의 이득이 아닌 전사회적, 전국가적 차원의 실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신문은 자력갱생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면서도 “우리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빛내이자면 이(자력갱생) 노선, 이 정신에서 한치도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며 체제 고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매체는 “화는 외세의존에서 오고 복은 자력갱생에서 온다”며 “앞으로 어떤 바람이 분다고 해도 우리 경제관리 분야에서 사회주의적인 것과 인연이 없는 그 어떤 사소한 요소도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특히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발붙이기 쉬운게 경제분야”라며 “제 힘으로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의지가 없으면 이색적인 비사회주의적 요소가 들어오게 되고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남북경협과 국제교류 등으로 외부 세계의 자본주의적 요소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실리적인 자력갱생 전략으로 현 체제를 고수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사회주의는 곧 자력갱생”이라며 신세대도 “혁명 선배”들이 고수해온 자력갱생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주장은 최근 김정일이 평양을 방문한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인 ‘도이모이’ 정책을 배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상반된 주장이다.
이번 노동신문 사설은 적극적인 개방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자립 불능 상태의 국가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외부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자력갱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정당화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