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매체에 “어려운 식량사정” 자주 등장

북한 언론매체들에서 북한 최악의 경제난이었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을 가리킬 때 쓰던 “어려운 식량사정”, “식량사정이 긴장한 조건” 등의 표현이 최근 수일 사이 현 상황을 기술하는 데 자주 등장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용 라디오방송인 평양방송이 지난 22일 오후 5시 자강도 강계청년발전소 근로자들의 생산활동을 전하는 가운데 “식량사정이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식량난을 드러내 놓는 표현이 대내외용을 막론하고 여러 매체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같은 날 오후 10시엔 함북 청진시 라남탄광 생산현장을 소개하면서 “식량사정이 긴장한 조건에서도 증산의 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고, 23일 오전 7시에는 함남 상농광산, 오전 10시에는 자강도 경공업공장 생산소식을 전하면서 “어려운 식량사정을 높은 정신력으로 이겨내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매체들도 마찬가지로 식량난을 드러내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대외용 매체에서와 달리 대내용 매체에선 이런 식량난이 ’세계 식량위기’에 따른 것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중앙TV는 22일 저녁 8시 뉴스에서 평양시 만경대협동농장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식량위기에 허덕이고 식량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농업근로자들로 하여금 자체로 농사를 잘 지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중앙방송은 23일 오전 6시 함남 룡성기계연합기업소 생산소식을 선전하는 가운데 “세계 식량위기에 따라 식량사정이 곤란해지는 조건에서도”라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이 22일 오후 5시 이후 23일 오전까지 내보낸 생산현장 소식 총 6건 모두에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고난의 행군’이 끝난 후인 2000년대 들어 고난의 행군 시기를 회상할 때 외에 현재의 식량난을 드러내는 표현은 농업 증산을 촉구하는 사설이나 논설에서만 쓰였을 뿐, 생산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독려성 보도물에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근 수일간 보도태도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방송은 2006년 1월 7일 신년 공동사설의 이행을 촉구하는 논설에서 “최근 연간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제와 반동들의 악랄하고 끈질긴 경제적 봉쇄와 연이은 자연재해로 인해 초래된 긴장한 식량사정은 인민들에게 적지 않은 생활상 불편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으나, 일상적인 생산현장 보도물에선 ’긴장한 식량사정’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매체들이 어려운 식량사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식량문제를 언급한 이후 현상”이라며 “감자와 밀.보리 생산 이후 추수 때까지 생산물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식량사정이 극히 어려워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5월 중순 함북 길주농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 시기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했고, 이달 초순 평북 태천 은흥협동농장을 시찰한 자리에서도 “현 시기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다”면서 농업생산의 “획기적인 전환”을 강조했다.

김영윤 연구위원은 “북한 매체가 대내적으로 식량난이 세계적 현상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우리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만큼 참고 견디자’고 호소함으로써 대내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성격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방송은 21일 오후 9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주식으로 이용하는 쌀과 밀, 옥수수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아와 빈궁이 심화되고” 있고 “식량문제 해결의 길은 오직 자력갱생에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한 프로그램을 내보낸 데 이어 22일 같은 프로그램을 수차례 내보냈고 평양방송도 같은 보도물을 22일 정오부터 수차례 반복 보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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