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로켓발사, 장거리 탄두투발 능력 과시

“강력한 도발만이 미국을 협상탁(테이블)에 끌어낼 수 있다.”

북한은 5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통해 로켓 꼭대기에 ‘인공위성’ 대신 ‘핵탄두’만 실으면 미국을 위협하는 장거리 ‘핵미사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 과시했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엔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를 하루빨리 북미 양자 협상에 끌어내려는 의도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북미관계의 급진전 가능성을 기대했던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위기 해결에 골몰하고,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감안해 이란에는 능동적으로 접근하면서 자신들에 대해선 부시 행정부 말기의 대북정책 수준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최근 강한 실망과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기반인 민주당측 인사들 사이에선 남북문제는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맡아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2006년 핵시험을 실시한 북한은 이번에 장거리 투발 능력까지 입증해 미국을 직접 위협함으로써 북한의 핵미사일을 장기적인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이나 동북아 지역 안보 문제가 아닌 미국의 국가안보에 시급한 중대과제로 미국 여론에 부각시켜 협상에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아직 검토 단계인 미국의 대북정책이 굳어지기 전에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충격을 가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북한이 2006년 7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때와 달리 “인공위성”으로 포장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를 극단적으로 자극, 과도한 역풍을 부르는 것을 피하자는 뜻으로 보인다.

2006년엔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심각한 대립 상태였으나, 지금은 상호관계의 암중모색 단계라는 차이가 있다.

북한이 대미 협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2012년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아야 한다는 북한 자체의 중대한 정치일정 때문이다.

이 시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미 3남인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한 데 따라 후계구도 확립 일정과도 밀접하게 얽혀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말부터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외치며 북한 전역의 주요 공장.기업소를 “강행군”하면서 “자력갱생”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되뇌어도 국제사회의 지원과 투자 없이는 4년뒤 “강성대국” 달성 목표는 공허한 메아리라는 것을 북한 지도부도 알고 있다.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지난 2월 방북한 미 전직 관료들에게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고 적성국교역법을 종료했는데, 미국 기업들이 왜 북한에 ‘외국인 직접투자’를 더 하지 않느냐”며 실망을 드러낸 데서도 북한 지도부의 이러한 인식과 다급함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은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로 대륙간 탄도미사일 가능성을 과시, 클린턴 행정부를 미사일 협상에 끌어내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기엔 미국이 3년간 매년 북한에 10억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인공위성을 쏴주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생산.배비.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 직전까지 갔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2001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시의 `미사일 발사 유예’를 2003년까지 유지하겠다고 유럽연합(EU) 방북단에게 밝혀 부시 행정부에게 2년 가까운 ‘말미’를 줄 것임을 시사했었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선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복기했을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180도로 바꿔 대북 정권교체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2개월도 안돼 미국을 몰아붙이는 것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앞으로 장거리 로켓 발사의 후폭풍이 가라앉은 후 미국과 대좌할 경우 미국에 제시할 협상 가격은 10년전에 비해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단순 미사일이 아니라 핵시험을 통해 ‘핵미사일’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줬고, 장거리 미사일의 기술도 진보, 사정이 10년전에 비해 늘어났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을 직접대화의 장에 끌어들이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한과 합의한 6.15공동선언 및 10.4남북정상선언의 이행에 소극적인 이명박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는 부수효과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이번 로켓 발사는 정치적 의미가 그 어느 것보다 크다.

북한은 김정일 3기 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9일)를 앞두고 두번째 “인공위성”을 쏴올림으로써 강성대국 달성의 희망을 주민들에게 확산시켜 내부 결속과 체제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의도도 분명히 했다.

지속적인 경제난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주민들에게 핵시험에 이은 인공위성 발사로 강성대국의 자긍심을 다시 한번 심어줌으로써 김정일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일심단결로 ‘정치강국’, 핵시험 등으로 ‘군사강국’을 이룬 데 더해 두 차례의 “인공위성” 발사로 ‘과학기술 강국’까지 이뤄낸 만큼 앞으로 남은 이러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경제강국’ 건설에 전 주민이 나선다면 강성대국은 머지 않았다는 기대와 낙관을 주민들에게 심는 데 선전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로켓 발사의 폭음은 북한으로선 김정일 3기체제는 물론 후계체제 구축의 ‘축포’라는 의미도 크다.

복수의 정보소식통은 “광명성 2호 발사는 북한 권력층 내부적으로 김정일 3기 체제의 축포라기 보다는 후계자 내정을 경축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아직은 정운의 어린 나이 때문에 대내적인 의미를 부각시키지 못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이러한 대내외 셈법 속에 국제사회의 제재 등 ‘강경’ 움직임에 ‘초강경’ 대응이라는 일관된 행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일이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미 안보리 논의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며 6자회담 거부와 핵시설 불능화 중단, “필요한 강한 조치들”로 경고했다.

북한으로선 향후 북미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오바마 행정부를 ‘길들일’ 필요성 때문에 이러한 경고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비공식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2차 핵시험 가능성까지 시사한 만큼,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 등 대응 수위에 따라 장거리 로켓에 올렸던 인공위성 대신 탄두를 올려 다시 발사하거나 좀더 크게 판을 벌여 2차 핵시험이나 핵탄두 소형화 과시 행동도 취할 수 있다.

북한은 1인 독재체제와 달리 여론에 민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특성을 꿰뚫고 있는 데다, 대북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나갔던 부시 미 행정부도 핵시험 ‘한방’으로 협상에 끌어내는 효과를 이미 맛봤다.

아울러 북한이 억류한 미국 여기자들은 자국민 보호에 민감한 미 행정부의 손발을 묶는 데 더없이 좋은 인질이어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협상에 적극 나설 때까지 다양한 수준의 강경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