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로켓발사, 북미 통역불필요 ‘미사일 언어’

북한이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함에 따라 1998년과 2006년에 이어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북미간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로켓이 인공위성을 실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국제사회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 개발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엔 ‘핵미사일’이다. 미국이 전반적인 `북한문제’중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다뤄온 것은 핵무기였으나,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으로 장거리 투발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핵과 미사일이 결합된 ‘핵미사일’이 미국에 당면 현안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핵미사일’의 실현에는 핵탄두의 소형화라는 고비가 남아있지만, 이미 북한의 핵과 로켓의 결합이 가시권에 들어섰고, 더구나 군사용 미사일로 전용 가능한 장거리 로켓 기술의 해외수출 가능성까지 북한 외곽(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의해 거론된 만큼 미국이 후순위로 미뤄놓기 어렵게 됐다.

미 국무부는 부시 행정부 때도 매년초 발간하는 새해 업무계획 보고서에서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현안’으로 분류해 놓고 있으며,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6자회담 등에서 다룰 필요성을 거듭 밝히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미국 정부의 우선 현안으로 다뤄진 것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그해 5월 북한이 사거리 1천㎞의 ‘노동1호’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국제사회는 특히 이란, 이라크 등 지역정세가 늘 불안한 중동에 이 미사일 기술이 수출될 가능성에 우려하면서 주목하기 시작했고, 일본은 직접 사정권에 들게 돼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배경 속에 북한과 미국은 1996년 4월과 1997년 6월 미사일 회담을 가졌지만, 서로 상대방의 협상 언어에 익숙치 못한 양측간 대화는 지지부진을 면치못했고 급기야 북한은 1998년 8월31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해나갈 능력을 과시, 미국을 압박했다.

당시 북한은 우주개발.이용을 위한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고 주장했고, 국제사회는 “북한이 아주 작은 소형의 인공위성 발사를 시도했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이것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용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고, 북한도 이러한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를 노렸다.

대포동 1호 발사 후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야당인 공화당도 인정하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 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고, 페리 전 장관은 1999년 방북을 통해 포괄적인 대북 접근책을 골자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았다.

북한과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그해 9월 미사일회담을 열어 북한이 미국과 정치회담을 하는 동안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겠다는 선언을 내놓았고, 2000년에는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거치면서 미사일 문제 해법의 합의직전까지 도달했다.

북한은 사거리 300마일(약 500㎞) 이상 미사일의 생산과 개발, 배치를 중단하고 이미 보유한 것은 수년내 폐기하기로 했으며 단거리 미사일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준수하고 MTCR 지침을 초과하는 미사일 및 관련부품과 기술의 대외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반대급부로 미국은 북한에 매년 3개의 인공위성 발사를 대신 해주고 또 매년 10억달러어치의 식량 등을 수년간 지원키로 했다.

미국이 돈을 주고 사는 형식의 이러한 해법은 그러나 미국에서 정권교체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러한 전례로 미뤄 북한의 이번 장거리 로켓 발사는 일정기간 냉각기를 필요로 하겠지만 결국 북미간 미사일 협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이날 로켓 발사에 관한 기사에서 1990년대 북미간 미사일 회담을 상기시키며 북한의 미사일 협상 용의를 내비쳤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로켓 발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는 것에 반발하고 있지만 미국으로선 이 문제를 안보리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따라서 당분간 냉각기를 거쳐 5∼6월께는 북미간 대화가 시작되고 결국 1998년 방식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정보기관이 로켓 발사전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이 ‘미사일 탄두’가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사실상 인정하고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북한의 로켓을 요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결국 대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대북정책 수립가들에 대해선 ‘클린턴 3기’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나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 클린턴 국무장관의 자문역할을 하고 있고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에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인물들이 그때보다 높은 자리에 다수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10여년전 북한의 협상가들과 마주앉았던 미국의 협상가들은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협상 언어와 다른 북한의 협상 어법에 처음엔 당황했으나 결국 북한 특유의 협상 화법을 파악하게 됐다고 나중에 회고했었다.

북한에도 과거 미국과 미사일 협상의 실무 주역들이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 외무성 부상, 리용호 전 영국 대사 등이 여전히 대미 외교를 책임지고 있다.

이는 북한과 오바마 행정부가 협상장에 대좌할 경우 클린턴 행정부 초기나 부시 행정부 전반기에 겪은 ‘협상언어 불통’ 현상을 최소화해 북미간 협상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급물살을 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는다.

미국이 북한과 본격 협상을 시도한다면 6자회담 등 다자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을 혼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미국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비용부담을 혼자 떠맡는 양자회담에 올인하기 보다는 양자회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6자회담 참가국들의 동의를 통해 비용을 분담시키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한 미사일 문제를 6자회담의 의제로 삼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북한은 양자든, 6자든, 이미 미국에 제의했던 유엔군을 포함해 북미 고위군사회담이든 준비가 돼 있다고 최근 보도했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북한의 로켓 발사계획 발표 직후 강경했던 입장과 달리 대화 지속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도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읽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에도 북핵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병행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부시 행정부 말기 6자회담은 ‘선 북미 양자회담 합의 – 후 6자회담 추인’의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북미간 회담이 시작된다면 이와 유사한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며 그 와중에서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억류 문제는 북미관계에 긍정적 매개물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