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로켓발사, 미사일 모라토리엄 2006년 파기

10여년전 북한과 미국간 미사일 협상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형식으로 합의됐던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은 북한이 2006년 7월 대포동 2호를 발사하면서 깨져 이번 장거리 로켓 발사 정국에선 국제사회에서 이에 관해 일언반구도 나오지 않을 정도다.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를 발사한 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 미사일 협상을 거쳐 이듬해 9월17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에 상응해 같은 달 24일 북미간 정치회담이 열리는 기간에는 미사일 시험을 유예하겠다는 것을 선언했다.

그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계기마다 미사일 발사유예 약속을 준수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2000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외국의 로켓추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평화적인 우주개발연구에만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10월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함께 집단체조 아리랑을 관람하던 중 98년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 모습이 연출되자 “이것이 첫번째 위성발사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면서 북미관계가 잘 되면 모라토리엄이 무기한 유효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인 2001년 5월 방북한 유럽연합(EU) 대표단과 면담에선 “2003년까지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유예에 시한을 부여했다.

당시 EU의 외교소식통은 북한 고위관리가 ‘2003년’의 의미에 대해 제네바합의상의 대북 경수로 지원 시한과 관계있는 것으로 설명했다고 전했었다.

2002년 9월 김 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북일 평양선언에선 북한의 미사일 모라토리엄이 문서로 명시되기도 했다.

선언은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 모든 문제에 관해 관련 국가간 대화를 촉진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며 “북한은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 미사일 발사 유예를 2003년 이후에도 또 연장시킬 의사를 표명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후 북일간 협상이 일본인 납북피해자 문제로 계속 맴돌고 미국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제재로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북한이 정세 타개책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2006년 5월19일 일본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6월19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이는 1999년 자신들이 서명했고 2002년 재확인한 모라토리엄상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며 모라토리엄은 분명히 지난해 6자회담 참가국들이 서명한 공동서명의 일부”라며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튿날 북한 외무성 아시아국 부국장급인 이병덕 일본담당 연구원은 방북중인 일본 기자들과 만나 미사일 발사는 “국가의 자주권에 관한 문제”라며 “북일 평양선언과 지난해 9월 6자회담 공동성명 등 어떠한 성명에도 구속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 보름 뒤인 7월5일 북한은 대포동 2호를 발사했고, 미국과 일본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결의 1695호가 통과됐으며, 그해 10월 북한의 핵시험 이후엔 안보리 대북 결의 1718호가 만들어져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금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백승주 박사는 “북한의 미사일 모라토리엄이 가장 명시된 것은 북일 평양선언인데 북한도 약속을 안 지켰지만 일본이 북일수교 약속을 안지킨 면도 있다”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모라토리엄을 지킬 이유가 없고 미사일 발사는 ‘주권사항’이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한.미.일은 이번 로켓을 탄도미사일과 같은 기술로 보고 안보리 결의 1718호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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