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前)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망명은 ‘북한 체제 균열의 전조’일까, 아니면 자식 교육을 걱정한 북한 엘리트 가족 귀순으로 끝날까.
일단 십여 년간 해외에서 북한을 홍보·선전해온 태영호가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꼈다’는 이유로 망명하면서, 이른바 ‘수령절대주의’를 결사옹위해온 핵심계층 충성심도 바닥에 떨어졌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한 1990년대 후반 식량난과 생활고가 이유였던 것과 달리, 이제는 고위 간부직의 인사들조차 ‘체제 환멸’을 이유로 탈북했다는 점에서 이를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화로 풀이하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이 엘리트 계층에 대한 감시·통제와 문책을 의도적으로 강화하는 경향도 나타나, ‘김정은 대(對) 엘리트 계층’ 구도의 견제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다만 개별적인 탈북 또는 망명 사건들만 놓고 북한의 체제 붕괴를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포정치’와 ‘유혈숙청’을 근거로 북한 체제 균열 가능성이 점쳐진 지 오래지만,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이 제7차 노동당(黨) 대회를 큰 탈 없이 치룬 걸 보면 북한 체제를 보위하는 엘리트 계급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북한 주체사상의 틀을 만든 황장엽 前 국제비서의 망명 이후에도 북한 체제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정은을 바로 곁에서 보위하는 최고위급 간부들의 연쇄 이탈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김정은 체제 붕괴를 점치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최근 데일리NK에 “북한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아지고 있지만, 고위급으로 올라갈수록 공포정치의 대상이 될 위험이 커지는 만큼 동요를 감지할 만한 요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면서 “태영호가 북한의 외교관이었다고는 해도 이번 망명 사건만을 두고 (체제 균열을) 확대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탈북 인사의 직급과 상관없이 탈북 사실이 간부들에게 알려져 심리적 동요를 일으킨다면 얘기가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 아무도 모르게 탈북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라면서 “북한 당국도 해당 탈북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할 때 조용히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외교관이 탈북하는 건 북한 체제 특성상 이례적이긴 하다”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수많은 외교관 중 몇몇이 탈출한 걸 벌써부터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체제 균열을 전망하려면 이탈의 지속성을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태영호를 비롯해 러시아 주재 북한 3등 서기관 등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 사실이 연이어 보도되니 균열 양상처럼 비춰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볼 때 이 같은 사건들이 체제 균열을 의미한다고 볼 순 없다. 태영호 망명 직후 평양의 감시·통제가 더 삼엄해졌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그만큼 북한 체제가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도 “체제 붕괴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지를 예단하는 건 어렵지만, 탈북과 같은 동요가 계속된다면 김정은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도 영향을 안 줄 수 없지 않나”라면서 “다만 김정은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세력들이 이탈하느냐 마느냐 하는 건 북한 체제가 붕괴되기 직전까지도 감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독재 체제의 특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원장은 “특히 북한의 체제 균열은 시장화와 공포정치, 제재와 압박, 외교적 고립 등이 축적되면서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고위 간부의 망명 등만 갖고 관측하진 말아야 한다”면서 “중요한 건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이 ‘크다, 작다’를 점치는 게 아니라, 체제 이탈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향후 체제 균열이 현실화 될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때문에 최근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체제 이탈을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유도할 전략적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특히 북한 당국이 추가 탈북이나 결집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정보 통제를 강화하는 만큼, 이 한계를 극복해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유입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박사는 “북한의 체제 균열을 유도하는 데 정보 자유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체제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향후 체제 균열까지 이끌 수 있도록 이들의 ‘연대’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 특히 대북방송 등을 통한 직접적인 정보 유입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고위 간부들의 의식화를 유도해 이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할 ‘커뮤니케이터’로 삼아야 한다고 박사는 부연했다.
그는 “사실 북한의 ‘균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양상은 1990년대 후반 대아사 시기 대규모 탈북 때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다만 당시의 균열이 핵심계층까지 닿지 못해 견고하게 짜인 ‘수령독재’ 체제를 20년 만에 붕괴시키는 데 실패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진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성택 처형 이후부터는 핵심계층 내에서도 균열이 감지된다. 상부에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거나 수령의 사상을 충실히 학습하지 않는 모습들이 대표적”이라면서 “때문에 단순 고위급 인사의 망명이나 탈북만 보고 체제 붕괴의 가능성을 점칠 게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 감지되는 작은 균열을 체제 붕괴의 추동력으로 삼을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연구위원도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는 사실 등을 북한 내부에 알리는 것과, 동시에 한국 정부는 어떤 직책의 탈북민이든 모두 포용한다는 기본 입장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