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실태에 관한 적나라한 고발과 폭로가 이어지면서, 인권 문제를 은폐하고 반박하려던 북한 당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북한이 아동 인권 착취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제기를 반박하려다가 되레 열악한 인권 실태를 자인하는 상황까지 펼쳐졌다. 지난달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 검토회의에서의 일이다.
이날 검토회의에는 CRC 위원들과 제네바 상주 북한 대표단 그리고 평양 파견 대표단들이 참석해 북한 아동의 노력동원(노동)과 교육, 보건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한 논쟁을 이어갔다. 2008년 이래 북한 아동인권 실태를 조사해온 CRC 위원들의 날선 질문에 비하면, 북한 대표단들은 실행되지도 않는 북한 아동 보호 법률안을 낭독하는 데 그쳤다는 후문이다.
북한 아동인권 착취 실태가 전 세계에 공론화된 상황에서조차 북한 당국은 ‘조선 아동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또 한 번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사게 된 셈이다.
당시 검토회의에 참석한 권은경 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 사무국장(사진)은 2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CRC의 질문은 그간 국제인권단체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구체적이었다”면서 “이에 비해 북한 대표단은 애매모호하고 관념적인 답변으로 일관했고, 현실성 없는 법률안을 낭독하기 바빴다”고 지적했다.
권 사무국장은 “북한 헌법이나 형법, 노동법을 보면 영락없이 민주화·문명화된 국가들의 법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지 않나”라면서 “북한 대표단은 북한이야말로 아동 복리에 있어 최고의 선진국인 것처럼 주장했고 ‘북한 아동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럼 없이 산다’는 선전 문구만 낭독했다”고 전했다.
권 사무국장에 따르면, 북한 대표단은 당시 회의에서 “북한에는 ‘출신성분(신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인권규약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아동 노동착취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동에 대한 착취는 결코 없으며 신소·고발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북한 대표단이 선전구호에 가까운 답변만 되풀이하자, CRC 측에서 이를 중단시키기까지 했다는 게 권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특히 아동 노동착취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북한 대표단은 18세 미만 아동들까지 강제 노력동원 조직인 ‘돌격대’에서 일한다는 증언이 나오자 수 초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북한 대표단은 돌격대에는 CRC의 검토 대상이 아닌 18세 이상 청소년들이 동원된다는 이유로, 돌격대가 CRC에서 논의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16, 17세 아동들까지 돌격대에 동원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북한 대표단 누구도 반박을 못한 채 멍하니 쩔쩔매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권 사무국장은 소개했다. 권 사무국장은 “7초가량 지나고 나서야 북한 대표단은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돌격대에 자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CRC 위원들은 독재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인권 유린을 은폐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제적 망신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자국 내 인권 문제를 시인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권 사무국장은 “북한 당국이 CRC 검토회의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형식적으로나마 질의하는 과정 자체가 CRC와 같은 유엔 협약기구들의 역할”이라면서 “북한 당국이 참석함으로써 북한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커졌기에 유의미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 2009년 제4차 CRC 검토회의 당시에는 북한 대표단이 아동인권 문제에 아무런 주장도 하지 못했지만, 이번 검토회의에선 아동권리협약준수를 위해 표면적으로나마 제도적·법률적 정비를 한 채 참석했다는 게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권 사무국장은 “유엔이 인권 개선조치를 강구할 것을 제안하면, 북한은 면피용으로라도 법률과 제도를 설립한다. 이후 느리게라도 해당 법률과 제도를 실행하려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제도적 정비가 현실화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런 식의 느린 변화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게 유엔 기구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CRC는 20일 최종 검토회의 결과를 분석해 10월 초 최종 점검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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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권은경 ICNK 사무국장과의 인터뷰 전문]
– 지난달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 검토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안다.
20일 검토회의는 북한의 아동 권리 전반을 검토하는 회의였다. 유엔은 산하 기구들을 통해 회원국들이 각각의 협약들을 잘 준수하는지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회의를 개최한다. 20일 검토회의는 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 국가들이 협약의 규정과 기준에 따라 아동 권리를 잘 보호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날 검토 대상이 된 북한은 1990년 아동권리협약에 가입, 비준했고 올해 5번째 검토 자리를 가졌다.
아동권리 검토를 위해 북한 당국은 지난해 5월 아동 인권 현황을 설명하는 국가보고서를 CRC에 제출했다. 이후 올해 상반기 동안 CRC는 북한 당국이 제출한 내용과 북한인권 시민단체들이 보고하는 내용을 검토했고, 20일 최종 검토회의를 열어 북한 아동인권 실상을 점검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 권 사무국장께선 CRC 측에 여러 차례 북한 아동인권 실태를 보고했던 것으로 안다. 실제 조사해본 북한 아동인권 상황은 어떤가?
일단 북한 아동들은 열두 달 내내 노력동원에 시달리고 있다. 초여름 농번기에는 지역 협동농장 인근 마을에서 함께 숙식하면서 모내기를 하거나 옥수수 영양단지를 만들어야 한다. 매일 노동정량을 완수하기 위해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하루 종일 노동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규정대로라면 중학교 4학년 이상만 동원돼야 하지만, 해당 지역 학생수가 적으면 더 어린 학생들도 동원된다고 한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를 시인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 같은 아동 노동력 착취를 ‘노력동원’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북한의 교육관련 법률에는 ‘현장학습’이라 기재해둔다. 그래놓고 CRC 검토회의에서는 아동 건강을 위해 1년에 3주간 교육 차원에서만 노동을 시킨다고 미화를 하더라.
– 북한 아동들이 처한 교육 환경은 어떤가.
북한 학교들이 학부모로부터 현금이나 물품을 착복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세부담 또는 경제과제라는 이름을 붙여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학교에 뭔가를 바치도록 하는 것이다. 심지어 현금으로 경제과제를 내는 일도 허다하다. 이렇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 아이들은 매주 경제과제를 수행할 수 없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북한 대표단은 CRC 검토회의에서 북한 학생들의 학교 출석율이 98%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학교와 교사들이 가정형편과 성분이 좋은 집안 아이들을 선호하다보니, 이런 학생들이 더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할 기회 또한 우선적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아이들은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의 기회가 매우 적은 편이다. 이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아동 인권유린 및 차별에 해당한다.
– 20일 열린 CRC 검토회의에 북한 대표단도 참석했다던데, CRC 측의 아동인권 문제 제기에 어떻게 반박하던가?
북한 측 대표단으로는 제네바 상주 대표단과 평양에서 파견한 대표단이 10명 가까이 참석했다. 북한에서 주민 보건, 법률, 모자보건, 교육 등을 담당하던 사람들로, 이들은 본인들을 이경훈, 김순화, 박경호, 안월선, 리혜련, 정성일 등으로 소개했다.
CRC의 질문은 국제인권단체들이 내놓은 보고서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매우 구체적이었지만, 이에 비해 북한 대표단의 답변은 애매하고 관념적이었다. 실행조차 되지 않는 법률안을 낭독하는 데 그쳤다. 북한 헌법이나 형법, 노동법을 보면 민주화·문명화 된 국가들과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론 전혀 다르지 않나. 북한 대표단은 마치 북한이 아동 복리에 있어 가장 선진화된 곳인 마냥 선전하면서 북한 아동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럼 없이 산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북한 대표단은 북한 내 인권 교육을 통해 아동과 부모의 인권의식이 높아졌고, 아동에 대한 착취나 폭행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소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고도 했는데, 실제 북한에선 신소를 할 때 익명 처리나 개인 사생활 보호가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신소를 한다는 게 곧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가져와 오히려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가 돼 버리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되도록 신소제도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북한 대표단은 국제인권규약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성분에 따른 차별이나 아동 노동 착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북한 내 아동 노동 착취나 성분에 대한 차별 등은 이미 수많은 탈북민들에 의해 확인된 바가 아닌가?
북한 대표단 역시 CRC가 질문의 날을 세우자 아무런 답변도 못한 채 쩔쩔 매는 모습이었다. 특히 16, 17세 아동까지 동원하는 돌격대의 실상을 묻자, 북한 대표단 중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한 채 7초가량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내놓은 답변은 중학교 졸업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국가의 긍지를 가진 채 돌격대에 자원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신소제도나 고발제도에서 어떤 식의 고발이 이뤄졌는지, 그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물었으나 북한 대표단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 북한 대표단의 답변을 듣고 현장 참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북한 대표단이 현실성 없는 법률안이나 낭독하는 모습에 CRC 위원들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곳 위원들은 이미 독재국가, 인권 유린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인권 실태를 은폐하려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CRC 위원들은 당사국 대표단들이 구체적인 답변을 피한 채 법률안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 그 자체가 인권 개선 조치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이렇게 형식상으로나마 질의에 참석한 것 자체를 유의미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만큼 북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라고도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유엔의 거듭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북한 당국이 유엔 기구들의 문제제기에 조금씩이나마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반응이 즉각적인 인권 개선 조치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북한 당국은 아주 미세하게 유엔이 설정한 기준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예를 들면, 유엔이 북한 당국에게 인권 개선 조치를 제안하면, 북한 당국은 면피용으로라도 법률과 제도를 설립한다. 이후 유엔이 실행 여부를 지적하면, 북한 당국은 제도를 실행하려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다. 즉 이런 식의 느린 변화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게 유엔 기구의 특징인 셈이다.
– 유엔의 권고에 북한이 반응을 보인 사례를 소개해달라.
한 예로, 2009년 CRC 4차 검토에서 북한 대표단은 아동 인권착취 실태에 대해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검토회의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파견한 대표단까지 참석했다. 특히 아동권리협약 준수를 위해 제도적·법률적 정비를 해놓고 답변을 했다는 게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이 같은 제도적 정비가 현실화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CRC가 북한 학교 내 강제노동과 현물 착취 등을 지속적으로 지적하자, 지난해 북한 내각이 학교 교육안에 대한 법률을 통과시켜 연 3주 이상은 현장학습을 금지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3주 이상의 농촌동원은 계속 이어졌지만, 아무쪼록 유엔이 아동의 농촌동원을 지적할 수 있는 근거를 북한 당국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북한 당국은 여전히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결과나 국가별 결의안에 대해 ‘정치적 모략’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협약 기구의 검토나 보편적 정례검토 등에 외교적인 입장을 취한 채 대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 당국이 열어둔 통로이기 때문에, 유엔 기구들을 활용해 인권 문제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 유엔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 다루게 되기까지 ICNK의 역할이 컸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 11월 초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정기 점검회의가 열리는데, 여기에도 보고서를 제출해 위원회가 북한 대표단에게 제대로 질의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내년에는 장애인 권리협약에 기초한 장애인 인권 점검이 있겠고, 또 북한인권 전반을 검토하는 보편적 정례검토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준비하는 데 당분간 매우 바쁠 것 같다. 앞으로도 유엔과 협력하는 전문가 분들이 북한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를 제출해 실질적인 북한인권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