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당국, 군부 부패 막으려 장마당 식량유통 통제”[8]

▲ 북한의 내부 소식을 전하는 지하 저널리스트들의 잡지 ‘림진강’

– 조선(북한)의 최근 식량정책에 대해 평가해 달라.

2005년 10월 국가는 기존의 ‘식량배급제’를 대신해 새로운 ‘식량전매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기득권의 정치적 목적을 은폐하기 위해 내건 간판에 불과한 것으로, 핵심내용은 나라의 식량유통, 그 중에서도 특히 식량의 장마당 유통을 억제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다고 하여 당국이 저들에게 유리한 종합시장 정책을 포기했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경제조치’의 목표가 장마당 타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마당은 허용하는데, 장마당 주요 유통물자인 식량의 독점권을 부패권력에게 기득권으로서 넘겨주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식량 미공급으로 나라에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인민을 극도로 외면하면서 배급제에 전혀 힘을 싣지 않던 국가가, 장마당이 활성화된 오늘 저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내건 조치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정경유착’의 면상을 장마당에 들이민 무지막지한 행동이었다.

기득권이 국가의 힘을 이용해 장마당 장악력을 강제적으로 높이려 한 것은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다. 장마당 경제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었어도 제지했을 이번 조치는 결국 장마당을 더욱 위축시켰다.

특히, 종합시장을 창설한 국가의 정책 집행에 스스로 장애를 조성하는 등 애초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과의 무역량도 오히려 축소되었다. 산돼지를 잡으려다 집돼지만 놓친 격이 되었지만, 주민들이나 경제관료 모두가 무지한데다 입에 재갈까지 물려있다 보니 결국 정책이 바로 잡히지 못했다.

– 당시 ‘식량전매제’를 실시하며 당국이 선전한 내용은 무엇인가?

그게 더 어이가 없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전매제 조치의 동기를 뭐라고 설명했는가 하면 “군대를 먹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군(先軍)정치답게 군대를 유지해야겠는데, 군량미의 대부분이 장마당으로 유출되어 군인들에게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전매제를 세워 장마당에서의 식량유통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마당의 식량 유통을 국가가 통제해 군부의 부패(식량유출)을 막아 보겠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군부의 부패를 막겠다는 핑계로 기득권의 이익만 보장해주는 꼴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예술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가 왜 이런 무의미하고 애매한 방법에 매달리는가? 문제는 간단하다. 권력의 질(質)에 자기모순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화국의 고위층들은 은폐된 ‘반(反)인민성’을 가지고 있다. 선군시대의 제일 큰 골칫거리도 역시 기득권으로 활개치고 있는 군부 고위층의 부정부패다.

시대가 ‘선군’이니만큼 부패한 군부 고위층을 건드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 그렇다고 전 사회가 군부를 본받아 부정부패에 빠져드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도 없다. ‘식량전매제’와 같은 아리송한 조치라도 취해 기득권의 수명을 늘려줘야 하는 것이 현 권력층이 처한 실상이다. 결국 선군운동은 그 시작도 끝도 모두 기득권층의 개인축재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식량전매제’ 실시 결과 식량재고는 전혀 증가하지 않고, 군인들에 대한 식량공급도 개선된 것이 전혀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반 인민들과 하층 군인의 식량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사실뿐이다. 배급제는 미공급으로 깨뜨리고 경제마저 망가뜨린 이제 와서 백성들이 장마당을 세우고 자력으로 식량을 해결하려 하니 그것조차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한심할 따름이다.

– 그렇게 무지한 정책을 집행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물론 ‘식량전매제’ 형태로 배급제를 되살리려는 국가의 욕망만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전체 인민을 말 몇 마디로 편하게 동원하며 쉽게 살아왔으니 과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가 ‘생명체’라는 사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경제는 아무리 억눌러 놓더라도 정치가 명령하면 즉각 원상으로 깨어난다고 착각하는 듯싶다.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오늘의 경제현실을 보고 우리가 분명 깨달아야 할 점은, 쑥대밭 위에서 발생한 이 경제는 더 이상 조선 노동당이나 조선 인민군이 과거에 세웠던 그런 경제가 아닌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경제라는 것이다.

1990년대 식량정책은 장군님이 진두에서 이끄시는 ‘고난의 행군’에 의해 마비되었다. 몇 달째 배급을 타지 못해 굶주린 노동자들은 공장에 출근할 수도 없었다. 전쟁도 없었는데 공장들은 무너졌고, 다시는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도난당하고 약탈당했다. 이 기간 동안 권력자들의 횡령으로 국가창고의 쌀은 깡그리 바닥났다.

그 쌀은 보이지 않는 많은 손들을 거쳐 장마당으로 흘러나가 쌓였다. 그러한 메하니즘(메카니즘의 러시아식 발음)으로 개인축재가 일어나, 사회에는 ‘일제 자전거 바람’, ‘록화기 바람’이 불었다. 전대미문의 배급제 붕괴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이와 같은 부정한 재분배가 일어나, 평균 월급으로 8년분에 해당하는 가격의 일본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은 식량의 배급정책을 통해 인간의 경제활동을 정치적으로 통제해왔던 사회였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에 이은 ‘장마당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변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보수적 상층은 구태의연하게 구시대적 타성에 따라 밀려가고 있다.

사회적 안산자(安山子, 논밭의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이 소수 상층세력은 오히려 낡은 제도를 복귀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장마당 경제를 구시대 정치 수법으로 조종하려 들었던 것이다.

– 그렇다면 그들이 마지막 수명을 사는 보수골통 세력이라는 것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과거로의 복귀에는 그리도 집착하면서 개혁·개방할 생각은 대담하게 못하는 것인가? 슬픈 일이지만 경제가 깨끗하게 파괴된 지금만큼 손쉬워진 개혁의 기회가 역사에 두 번 다시 오겠는가. 마치 전쟁 직후에 농장 협동화가 ‘빙판에 박 밀기였던 것처럼(아주 쉽게 추진되었던 것처럼).’

물론 그들에겐 아직도 개혁을 주도하느냐 가로막느냐의 선택의 여지가 있고, 그에 따라 역사의 주인으로 남는가 아닌가의 지위도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현 보수세력은 역사의 흐름, 시대의 흐름에 밀리고 말 존재들이기에 마지막까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극소수 보수 상층의 이익에 복무하며 개혁을 한껏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가가 그만큼 막다른 골목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개혁을 하자면 그에 마땅한 힘이 있어야 하며 집권을 유지하는데도 필요한 재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군대를 먹이고 군수산업도 지탱이 된다. 현 정권은 그럴만한 재정적 힘조차 없으니까 적자 기업이든 영세 농촌이든 덮어놓고 달려들어 수탈적 방법으로 징발해간다.

선군정부는 기업소들에 “네 혼자서 벌어 먹으라” 해놓고, 좀 되는가 싶으면 “장군님 명령”이라고 왁 쓸어 내려와 무조건 빼앗아간다. 이런 무지한 전 국가적 대형수탈이 사회경제를 억압적 악순환 속에 몰아넣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감을 국가의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그 누구도 느끼지 않는다. 자살행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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