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누나 만나는 소설가 박태원 아들

“붙들고 실컷 울다가 오겠습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천변풍경’ 등으로 1930년대 문단을 풍미했던 월북작가 구보(丘甫) 박태원(1909-1986)의 둘째아들 재영(64) 씨는 16일 소년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부푼 기대감을 내비쳤다. 초등학교 3학년때 헤어진 큰누나 설영(70) 씨를 56년만에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19-21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 이산가족 특별상봉 행사에서 1차 상봉단으로 참여해 평양에 살고 있는 큰누나를 만난다. 6·25 전쟁통에 헤어졌을 당시 누나는 풍문여중 3년생이었다.

“누나는 돈암국교를 다닐 때 줄곧 전교 1등을 했는데 아버지가 조금 괴팍스러워서 경기나 이화를 가지 못했어요. 교장선생이 보기싫다는 이유로요.”

재영 씨는 “삼남매는 1·4후퇴때 큰집 식구를 따라 피난을 갔으나 외가에 가있던 누나는 이후 행방불명이 됐다”면서 “1960년대에 남쪽에서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을 정리했는데 1989년 북쪽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구보의 장남 일영(67) 씨가 1989년 평양축전에 참가하려다 불발로 그쳤던 일을 계기로 북쪽의 누나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이듬해 평양축전에서 상봉했다는 것이다.

재영 씨는 이번 금강산 상봉 때 16년전 북측 큰누나에게 썼던 편지를 전할 예정이다. ’평양 DHL’이라는 제목의 이 편지는 1990년 ’DHL 고객문예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수필. 헤어진지 39년 9개월만에 썼다는 이 편지는 생사도 모른 채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슬픔이 절절하게 적혀 있다.

그는 이 편지에 “’누나’라고 부르던 그 시절,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오남매가 서울 공기 맑고, 산수 수려한 성북동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식구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여, 이제 40년이 흐른 오늘, 어머니는 서울에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평양에서 돌아가셨으며, 큰누나는 평양에서, 형님은 미국에서, 그리고 나머지 삼남매는 서울에서 남아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다”면서 “어느 날 ’평양행 DHL’이 개통됐다고 하면 한 달음에 달려가 그간 쌓아놓았던 편지보따리를 ’평양행 DHL 제1호’로 부치겠습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재영 씨는 “이번 만남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면서 “할 말이 너무 많다보니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목메인 소리를 했다. 큰누나 설영 씨는 북쪽에서 김일성대학 성악과를 나온 강씨(1982년 작고)와 결혼해 1남4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큰누나에게 줄 선물로 한복, 손톱깎기, 면도기, 카메라 등을 준비했다는 그는 “죽기 전에 인터넷으로 남북간에 e-메일이라도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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