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노동자들 南기업 기술연수오다

북한에서 파견된 연수생들. 남자 9명, 여자 3명 모두 12명이고 앞줄은 한국인 기술자

이튿날 아침 9시 반에 만경대 옛집을 방문하고(갈 때마다 방문해야 한다) 동 평양 대성백화점 옆에 자리 잡은 5층 건물 “광명성경제연합회”를 방문했다. 방이 100개정도 되고 연합회 산하 회사들이 전부 이 건물 안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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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필자가 평양에 세운 봉제완구공장이 한참 잘 돌아 갈 때라 먼저 완구공장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이어서 ‘엘칸토’ 구두 공장에 대한 새로운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장시간 상담을 했다. 북측이 가능성 있는 사업임을 확인하고 평양구두공장에서 만든 가죽구두 견본 한 켤레를 가지고 귀국 길에 올랐다.

평양에서 나온 뒤 광명성경제련합회 북경사무실에 들러 ‘리재철’과 ‘김진수’를 만나 앞으로 “엘칸토”구두공장을 평양으로 진출시킬 계획인데 문제는 평양일꾼들의 기술교육과 투자자측 기술자의 평양방문이 앞으로의 큰 문제일 것 같은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문제없다”고 대답한다.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자필 서를 참고로 받았다.

“북남 경제협력차로 북측기술자들의 제3국 실습은 언제든지 가능함. 광명성이 모든 수속 진행함.” 리재철 1997.3.18

“김찬구 선생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검토하여 본 결과 유익하고,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필요한 기술자들의 조국방문과 관련한 수속을 광명성이 책임진다.” 광명성 대표부 김진수 1997.3.18

귀국하여 엘칸토측에 평양 진출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본격 적인 진출 작업을 시작했다. 3가지 안의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정확한 투자의지를 보이기 위해 필자는 중국 강소성 태창시에 있는 ‘태창 엘칸토 피혁제품유한공사’의 고문으로 임명받아 정식으로 명함도 준비했다.

북한 기술력 부족으로 합영관계는 포기

위임장과 제반 서류를 가지고 다시 평양으로 갔다. 사업은 빠르게 진척돼 월별 계획을 세워 실천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이때부터 필자는 (주)엘칸토 중국 태창공장 고문 직함으로 엘칸토에 대북사업 전반을 담당했다. 북한과 엘칸토 간의 모든 서류는 필자의 아이디어로 이뤄지고, 서명됐다.

1997년 5월26일 엘칸토측의 실무책임자와 북한측의 실무진행자가 직접 만나 사업 추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를 가졌다. 북경에서 광명성 총회사 총사장(전성근)과 엘칸토의 정주권 공장장(현 엘 사이버 사장)이 함께 1차 투자내역 및 임가공 단가에 대한 협의를 했다. 이 자리를 통해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사업 대상인지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1997년 6월 7일 필자는 평양구두공장에 완제품 견본 10족을 가져가 직접 제조하게 했다. 투자자측의 의향에 공식적인 의견을 담은 의향서를 받음으로서 사업 추진이 공식 인정을 받게 됐다. 북한 기술자들의 중국 태창구두공장에 파견하여 기술연수에 대한 협의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1997년 7월 5일 평양구두공장에서 견본으로 만든 구두가 기술부족을 드러내 이 공장과의 합영관계는 포기하기로 했다. 북한내 별도의 구두공장을 설립하여 엘칸토 단독 기술로 공장을 운영하는데 일단 합의했다. 광명성 측에서 만경대 구역에 새로운 건물을 선택하여 여기에 공장을 운영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여기까지 사업이 진행된 관계로 필자는 광명성총회사 측에 위임장(아래 위임장 참조)을 요구했다.

앞으로의 기술자 초청 사업을 진행할 임직원 포함 7명의 평양방문 초청장도 받았다. 방북 할 7명의 초청장도 받았겠다 이제는 양측 회장의 북경상담만 남아있다.

엘칸토 회장의 대북진출 의지가 가장 큰 힘

그해 8월 15일 북경 힐턴호텔 중국식당에서 저녁 7시에 광명성경제련합회의 김봉익 회장과 그 일행들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8월 14일 필자는 정주권 이사와 서울에서 상해를 거쳐 엘칸토 중국공장으로 갔다.

이 공장에 앞으로 북한연수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점검 차 갔다. 기숙사며, 식당이며, 주위 환경이며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15일 아침 상해를 출발해 북경에 도착해서 광명성경제련합회 북경사무실에 연락하니 회장단 일행은 북경대사관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에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녁7시 정각 엘칸토 김용운 회장과 김봉익 회장은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그동안 사업진행을 위해 뛰어 다닌 김찬구 고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서로에게 칭찬과 축배를 돌렸다.

이 자리에서는 서로가 한민족임을 느끼며 밤늦도록 사업이야기와 김용운 회장의 평양중학교 시절 등을 이야기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이 광복절이라 우리들의 만남도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감회스러워 했다.

이날 식사자리는 남-북의 새로운 경제협력의 꽃을 피우는 자리로서 북측은 김봉익회장, 전성근 총사장, 오광식지도원, 리치훈, 리재철 북경대표부, 우리측은 김용운회장, 필자, 정주권 이사, 장한경 무역부장, 신용산 엘칸토 북경지사장, 그리고 미국에서 오신 손님도 참석했다.

엘칸토 중국 공장에 북 연수생 12명 기술 배워

이번 만남은 엘칸토의 평양 진출에 대한 서로의 신임과 상호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또, 광명성 대표단과 기술연수원들의 중국공장 방문 및 기술연수에 대한 세부사항을 협의하고 약속했으며 본 사업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각오를 내리는 자리였다. .

8월16일 아침 일찍 김봉익 회장 일행과 북경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싸이터’백화점 엘칸토 매장을 방문했다. 고급 구두의 아름다움과 예술품과도 같은 다양한 모습의 구두를 한 켤레씩 선물 받고 즐거워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후에는 광명성 일행 3명(전성근, 오광식, 전영일)과 우리는 북경에서 비행기 편으로 상해를 거쳐 태창공장으로 갔다. 앞으로 연수생이 오면 거처할 숙소며 식당이며 휴식시설 등 신변안전과 주위 환경 등 공장 시설과 현지중국기술자들의 작업모습을 관찰하고 연수생들을 보내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녁에는 북한손님들을 ‘가라오께’로 안내했다. 당황한 이들은 안자마자 나가려한다. 앞을 막고 억지로 안게 했다. 넓은 홀에 술이 오고가고 거나해졌다. 자본주의 접대 문화를 알게해줄 오량이었다. 이들은 중국 봉사원들과도 함께 노래도하고 춤도추며 한바탕 어울렸다. 이렇게 놀아보기는 이들도 평생 처음일거다. 이들도 인간인데 아니 즐거웠겠나!

술도 거나해 졌고 코를 골지 모르니 각자가 한 방씩 편하게 자라고 방을 정해 줬는데도 전성근이는 오광식과 함께 자려고 한다. 알고 보니 자다가 물신부름 시키려고 습관이란다. 다음날 오전 북측 일행이 평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상해까지 전송을 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이렇게 사업토론을 하면서도 연수생들에게는 끊임없이 고급 가죽제품에 대한 감각을 익혀주기 위해 갑피(구두 윗부분) 작업은 계속시켜 솜씨를 익숙하게 했다. 실습용으로도 많은 가죽을 보내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들을 엘칸토측에서 적극적으로 협조 해 줬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 됐다.

한편으로는 평양공장에 보낼 설비를 준비하여 국내 제반 허가를 미리 받게했다. 9월 연수생들의 교육기간에 만경대 구두공장으로 기계시설물을 전부 도착시킨다는 목표를 세워 일을 진행했었다.

연수생들의 체류 중 사용할 생활 필수품들도 골고루 준비하고 한방에 2명씩 잠자리도 편히 자고 쉴 수 있도록 준비를 끝냈다. 축구공과 배구공도 준비했다. 운동복 상하와 작업복, 그리고 필기도구까지 준비를 마쳤다.

중국공장 연수생은 남자 9명, 여자3명 모두 12명으로 결정됐다. 처음 내가 요구한 인원은 24명이었다. 각 분야별로 최소한 2명씩은 교육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24명을 요청했는데 국내 사정상 1차로 12명만을 교육시키기로 합의하고 일정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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