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내부교양 “이명박, 노태우보다 나빠”

북한당국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외적 공식 반응을 아직 유보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미 지난달 중순 경부터 인민반과 직장 강연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 비판 교양사업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만난 평북 A공장 무역일꾼 오문식(가명) 씨는 “2월 중순, 공장 당 비서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지난해 ‘남조선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돼 공화국(북한)을 헐뜯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는 내용으로 노동자들에게 남측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고 말했다.

오 씨는 “새 정부 출범과 같은 남한의 주요 정세는 상부의 통일적인 지휘가 있어야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며 “2월 중순부터 북한 전역에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관련된 주민교양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업소는 그나마 몇 천원이라도 월급을 주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공장들에 비해 당 조직이 튼튼하다”고 소개한 뒤 “우리 당조직에서 벌이는 교양사업은 평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오 씨는 “강연회에서는 남조선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지만 언제 날아갈지(정권이 바뀔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명박이 당선되기 전부터 같은 당 내에서 박근혜와 난잡한 ‘개 싸움 소동’(이전투구)이 있었고,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오래 못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기자가 오씨에게 “남한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권력투쟁과 같은 방식으로 쉽게 대통령을 쫓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당 조직에서 ‘남쪽은 돈이면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도 바꿀 수 있다’고 교양하고 있고, 일반 노동자들은 (그런 말을) 그냥 믿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북한당국이 남한 정세가 불안정하다고 선전하는 이유는 일단 주민들에게 새로운 남한 정부에 대한 환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는 또 “(국가에서는) 이명박이 우리를 헐뜯는데 앞장서고 있는데, 이는 과거 노태우보다 더 나쁘다고 주민들에게 교양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지원도 많이 해줬는데 앞으로는 이런 것도 줄어든다고 하니 주민들이 남조선의 새 정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북한당국은 과거 노태우 정부 시기의 ‘북방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미 제국주의 대표적인 주구”로 표기했었다.

한편 ‘데일리엔케이’ 북한 내부 소식통도 “2월 하순부터 주민 대상 각종 강연회에서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돼 미제(美帝)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됐다’는 교양이 시작됐다”고 21일 전해왔다.

소식통은 “당국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미국 핵무기도 대량으로 들여올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주민들을 긴장시키기 위해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한미 군사훈련과 북한인권 거론 등 사안별 대응에 주력해왔다. 이달 6일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 형식으로 현 정권을 보수집권세력으로 지칭하면서 ‘독재정권의 후예들’이라고 비난한 것이 대(對) 이명박 정부 비난으로는 유일하다.

북한당국의 이른바 ‘주민 교양’은 일상적인 對주민 선전활동에 불과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내부 비판이 향후 쌀 지원 등 실제 대남 협상에서도 나타날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