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일 후계낙점은 60년대말..군사 맡아”

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은 1960년대 말이며 후계자로 낙점하면서 군관련 업무를 맡겼었다고 북한의 온라인 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2일 보도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74년 2월11일 자신의 32회 생일(2.16)을 앞두고 열린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후계자로 추대됐으며, 북한은 6년 뒤인 1980년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이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했다.

이 매체는 ‘선군정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일성 주석이 1960년대 말 “선군혁명의 대를 이을 계승자, 후계자는 장군님(김정일) 밖에 더는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벌써 이 시기에 장군님께 인민군대 사업을 맡아 지도할 데 대한 과업을 주시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김 주석의 “선군사상과 선군혁명 노선을 계승해 인민군대를 강화하는 데 선차적 힘을 넣는 선군정치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라는 것.

이 매체는 특히 1969년 1월 열린 북한 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4차전원회의 확대회의가 김 위원장의 선군정치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이 회의에서 “인민군대 안에 장군님의 영군체계 확립과 선군혁명 위업 계승의 기초 축성,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 데서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북한 노동당 당역사연구소가 펴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선군혁명사’라는 책도 김 위원장의 후계준비 기간을 1969년 1월부터 김 주석이 사망한 94년 7월까지로 구분했다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으나 왜 1969년 1월을 기점으로 잡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1969년 1월 열린 인민군 당위원회 4기 4차전원회의 확대회의는 북한 역사에서 김창봉, 허봉학 등 김 주석의 직계 항일빨치산 세력이 주축이 된 군부의 ‘군벌주의’를 청산한 회의로, 김일성 유일지배 체제를 완벽하게 확립한 마지막 단계였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구도 확립 과정에서 나타난 권력투쟁은 정치적 경쟁세력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계모와 이복형제 등 친인척과의 투쟁으로 바뀌었다.

`우리민족끼리’는 또 김 위원장이 1968년 북한이 나포한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사건과 이듬해 북한 영공을 침범했다가 격추된 미 정찰기 EC-121 사건 때 미국과의 “군사 대결전”을 직접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며 이들 사건이 김 위원장의 “선군정치 실현에서 또 하나의 봉우리를 이룬다”고 주장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