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일, 인민보안성 전격 시찰 `주목’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 본부를 시찰했다고 북한 언론매체들이 휴일인 22일 일제히 보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인민보안성 본부를 시찰한 사실이 북한 매체에 의해 보도된 것은 1998년 9월 `김정일 체제 1기’ 출범 이후 처음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그동안 인민보안성 본부를 실제로 시찰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시찰은 했지만 북한 언론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속성에 비춰 볼 때 북한 매체들이 일제히 김 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한 것 자체가 단순히 넘길 만한 일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난과 식량난 등으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사회적 불안에 따른 주민 동요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인민보안성을 통한 내부 통제 강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3남 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과 연관짓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3대 세급의 후계자 구도를 굳혀 가기 위해서는 혹시 불거질 수 있는 불만 세력의 반발을 미리 봉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들을 뒷받침하듯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도 김 위원장이 인민보안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격려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인민보안성의 모든 지휘성원(간부급)과 인민보안원들이 계급투쟁의 제1선부대, 당의 내무군으로서의 영예로운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맡겨진 전투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면서 그들의 수고를 치하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당의 정치보위자, 계급투쟁의 선봉투사들인 인민보안원들이 앞으로도 혁명의 전취물과 인민의 생명재산을 목숨으로 사수해 가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덧붙였다.


인민보안성은 북한의 치안 유지와 사회 통제를 담당하는 내각 기관이다.


1945년 11월17일 보안간부훈련소로 출발해 1948년 9월 북한정권 수립 때 내무성 산하의 일개 국(局)이 됐으나 1962년 10월 내무성이 국토관리성으로 바뀌면서 사회안전성이라는 명칭을 갖고 독자적 기관으로 분리됐다.


이어 1972년 12월 ‘사회주의 헌법’ 개정과 함께 사회안전부로 개칭됐으며 그후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사회안전성으로, 2000년 4월 10기 3차회의에서 인민보안성으로 바뀌었다.


이 기관의 수장인 주상성 인민보안상은 인민무력부 장성 출신으로 1990년대 최전방인 강원도 평강군에 주둔하는 5군단장으로 근무했고 92년 4월 상장, 97년 2월 대장으로 승진을 거듭하다, 2004년 7월 해임된 최룡수 후임으로 인민보안상에 올랐다.


그는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에 임명됐으며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 위원장이 1997년부터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북한 체제는 폭정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주민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민보안성의 역할과 위상도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인민보안성을 시찰이 처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번 공개시찰은 전격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북한 사회의 통제기구로서 인민보안성의 정치적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셈”이라고 설명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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