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일 와병설속에 찾아본 평양

건강이상설 속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3일로 `은둔’ 40일째를 맞은 가운데 북한의 `혁명의 심장’이라는 수도 평양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지난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첫 대규모 방북에 나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방북단이 본 평양은 일상에 바쁜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일요일인 21일 평양 시내 양각도호텔에서 만경대, 주체사상탑,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거리 거리마다 아침 일찍부터 삼삼오오 짝을 이뤄 걸어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 이따금 `평양역~련못동’ 구간을 운행하는 255번 궤도전차가 승객을 가득 태운 채 지나갔다.

당이나 군의 간부로 보이는 관리가 탄 승용차가 간간이 텅 빈 도로를 질주할 때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흰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나 치마가 `대세’. 하지만 송산식당과 광복거리 사이의 길가에서는 빨간색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치마를 입고 통굽 구두를 신은 여성 등 화려한 복장의 사람들도 보였다.

광장이나 백화점 앞 등 시내 곳곳에 세워진 공중전화는 사람들로 붐볐다. 공중전화마다 너댓명씩 줄을 섰다.

자금난으로 16년간이나 공사가 중단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인류 최악의 건물’ , `유령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105층짜리 류경호텔 부근을 지날 때는 북측 관계자가 차창 밖을 가리키며 “공사가 재개됐다”고 말했지만 외관상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동하는 버스 밖으로 보이는 살림집(아파트)들은 대부분 외벽이 벗겨졌고, 얇은 창문은 빛이 반사돼 번들거렸다.

광복절백화점 앞에서는 `방송선전’이라는 간판을 단 군청색 차량을 세워둔 채 군인 복장의 여성이 체제 선전가요를 우렁차게 불러댔다.

지하철 건국역 주변에서는 궤도전차를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고 주변 교차로에서는 녹슬어 작동하지 않는 신호등 앞에서 주민들이 길을 건넜다.

거리 곳곳에서 `위대한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 `선군령도 일심단결 강성대국’,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공화국 창건 60돐을 맞는 올해를 조국 청사에 아로새겨질 혁명적 전환의 해로 만들자’, `우리식 사회주의 필승불패’ 등의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개선문 앞에는 양각도호텔 부근에서 열리고 있는 `제11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을 안내하는 문구가 나붙었고 대동강 주변에서는 연인과 가족들이 손을 잡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체사상탑 부근에서는 화려한 `땡땡이’ 블라우스에 남색 치마, 빨간 립스틱을 바른 젊은 여성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고 가끔 주민들이 `오와 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걷고 있었다.

북측 안내자는 “아마 지방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2년전에도 평양을 방문했던 한 방북자는 “2년 전보다 거리가 많이 깨끗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평양을 찾았던 다른 방북자는 “주민들의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별로 침체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또 다른 방북자는 “주민들 모습에서 별로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촌평했다.

개선문과 인민대학습당 앞 등 주요 건물 부근의 도로는 최근 북한이 정권 수립 60주년(9.9)을 앞두고 대대적인 개건을 한 덕분인지 비교적 잘 단장됐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 고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로 가는 길, 만경대다리와 순화강다리 부근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패여 있었다.

칠골동에서 혁명거리로 가는 길가에서는 자전거 뒷자리에 `대한민국’이라는 파란색 글씨가 아직 선명한 헌 포대자루를 싣고 가던 한 중년 남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방북단 버스를 흘깃 쳐다본 뒤 갈 길을 재촉했다.

양각도호텔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M(30.영화사 근무)씨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관해 들어봤느냐는 질문에 “만나본 주민들중 일부는 `모른다’거나 `(김 위원장이) 바빠서 (9.9절) 행사에 못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체사상탑에서 만난 오스트리아인 요제프 후버(40.제지업체 CEG 근무)씨는 “15개사 20여명이 `사업 여행을 왔다”며 4일간 머물 예정인데 “북한 주민 몇명을 만났지만 모두 `모른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22일 밤 7시30분~8시30분께 평양 시내.

평양 순안공항에서 양각도호텔로 오는 길엔 `크리스마스 풍경’이 차창 밖에 펼쳐지기도 했다.

김일성 광장 앞의 내각 종합청사 앞 가로수는 `전등 옷’을 입어 반짝거리고, 청사 앞에는 `선군혁명 총진군!’이라는 붉은색 문구가 번쩍이는 가운데 멀리 주체사상탑도 불을 밝히고 있었다.

평양 교외 농촌에서는 불빛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지만, 도심에 들어서자 많은 살림집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최완규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경제는 겉으로 보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이른바 `위신 경제(prestige economy)’라며 “평양이 겉으로 보이는 건 1~2년 전보다 좋아진 것 같지만 속은 아직 똑같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측면만 보고 북한 사회를 평가하기보다 좀더 시간을 두고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한편 북측 관계자들은 20일 밤 환영만찬 직후 남측 취재진이 이충복 북측 민화협 부회장에게 현 남북관계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돌발’ 질문을 하고 촬영한 데 대해 “예정에 없던 것”이라며 `검열’을 요구, 방송사의 일부 촬영분이 삭제되기도 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취재진이 인민대학습당에서 민간인들에게 다가가 질문하는 것을 막거나 옆에 바싹 붙어서 대화를 듣는 등 취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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