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권력구도, 94년 당 중심→2006년 군 핵심”

▲ 김일성 때 권력균형을 유지하던 권력 구도가 김정일 이후 국방위·당·군으로 집중됐다 ⓒ중앙일보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노동당 중심 체제의 권력구도가 김정일 이후 인민군 출신이 당과 맞먹는 파워 그룹이 형성돼 크게 변한 것으로 분석됐다. 군 출신의 약진과 함께 행정·경제 관료들의 세력도 크게 위축됐다.

4일 중앙일보는 94년 김일성 주석 장의위원회 명단(273명)과 통일부·정보원의 북한 인물 정보(324명) 등을 분석해 북한 파워 그룹 51명(김정일 포함)의 명단과 연결망 구조를 분석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당 정치국·중앙위원회를 기반으로 내각·군·최고인민회의·외곽단체 등에 실세들이 골고루 배치됐던 김일성 때와는 달리, 현재는 국방위원회(8명)를 최측근 인물들로 충원하고 ‘김정일=국방위원회=국가’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 출신의 약진이 뚜렷해 김정일을 뺀 파워 그룹 50명 중 군 현직 인물은 94년 5명에서 지난해 12명으로 급증했다. 이용무 국방위 부위원장(차수)과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수행 횟수가 가장 많은 ‘대장(大將) 3인방(현철해·박재경·이명수)’이 속한다.

여기에 국방위·당에서 군 관련 업무를 맡은 인사(전병호·황병서·이용철)와 군 출신(주상성 인민보안상, 장성우 당 민방위부장)까지 포함하면 17명으로 늘어난다.

노동당 실세 27명(94년 25명) 중에서는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 장성택·이제강·이용철 제1부부장과 김정일서기실(비서실)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강상춘·이명재가 포함돼있다.

반면 행정·경제 분야의 관료들은 18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었다. 98년 헌법 개정 이후 국가부주석(4명), 중앙인민위원회(총리실 격)가 폐지돼 모두 7명이 빠진 게 가장 큰 요인이다.

경제 재건보다 체제 수호를 우선 목표로 하는 김정일이 “경제 사업에 말려들면 당 사업도 못하고 군대 사업도 할 수 없다”며 경제 분야와 거리를 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다.

파워그룹 51명 중 김정일을 필두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 3위를 차지했다. 이어 전병호 당 군수담당 비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영춘 총참모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이 10위권에 들었다.

또 파워그룹 50명은 혈연·학연·직연(職緣)에 의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50명 중 30명이 그런 관계를 맺고 있고 나머지 20명 중에서도 혈연·학연 등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감안하면 그 비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친인척 관계로 묶인 인물 김경희(여동생) 당 경공업부장, 장성택(매제)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 6명을 비롯해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인사 22명, 직연으로 엮인 엘리트 그룹 10명 등이 있다. 장성택은 친인척·학연·직연에 모두 해당됐다.

신문은 이에 대해 권력층에 진입하려면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결정적이며, 고위직 충원 역시 김정일 1인 체제를 보장하기 위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신문은 ‘북한의 주요인물’ 정보를 모두 취합한 486명을 분석한 결과 북한 주도세력의 노령화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북한 사회 엘리트는 70대(20.6%)-60대(15.8%)-80대(13.4%) 순으로 많았고, 평균 연령은 지난해 75세나 됐다. 남한 평균 연령이 5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북한 전문가들은 주요 인물 중 나이가 확인되지 209명에 젊은층이 많을 수 있으나 지도부의 노령화 추세를 뒤바꾸기 힘들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