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 논의와 더불어 남북한 국민의 실질적 통합을 위해 ‘과거청산’ 문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거 청산의 성공여부가 향후 한반도 사회통합과 통일국가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통일독일의 경우 동독에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한 가해자 처벌 등 제도적 과거청산을 사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했음에도, 사회의 실질적 통합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면밀하게 과거청산 관련 논의·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와 관련, 박정원 과거청산통합연구원장(사진·국민대 법과대학 교수)은 최근 데일리NK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남북한의 통일은 분단의 원인과 그 심화 과정에서 반목과 대립의 골이 깊은 만큼 통일의 이행과정에서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동서독과 달리 내전(6·25)을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남북한의 과거청산은 보다 복잡하며 그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은 만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어 “한반도의 통일로 남북한 주민이 모두 행복해지는 통일국가를 미래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정한 주민의 통합, 즉 사람의 통합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면서 “형식적 통일은 정신적 통합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과거청산이란 이런 점에서 고민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그는 현재 ‘먼저 온 통일’로 일컬어지는 탈북민에 대한 정착제도의 성공은 통일 과정에서의 과거청산을 준비하고 시험하는 사례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탈북민에 대한 정착지원 과정은 남북통합 문제 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과거청산 사례의 하나로 주목되고 있다”면서 “남북의 통합과정에서 탈북민 사례는 과거청산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 선행적인 경험을 축적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런 면에서) 북한의 과거청산의 주체는 직접 피해당사자로서 북한주민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북한주민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사전준비작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북한지역에 대한 인권의식의 함양과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합리적인 과거청산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면서 “이 점에 있어 현실적인 과거청산의 사례로 대두되고 있는 탈북민의 정착과 지원사업에 대해 관심은 그 해법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그는 “향후 통일을 고려했을 때 통일국가의 평화와 남북한 국민의 화합·화해를 위해서는 북한에서 자행된 인권침해에 대한 효과적인 처리방법이 나와야 할 것”이라면서 “즉각적인 청산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변화에 의해 가능한 접근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이어 “이 시점에서 정부와 민간의 협력체제 관점에서 과거청산이라는 주제를 고려한다면 올해 제정된 북한인권법의 제정과 이에 따른 실천문제를 들 수 있겠다”면서 “북한인권기록관리의 활용방안과 관련한 문제에서 구체적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헌법 전공자로서 북한법을 연구하고 있는 박 원장은 “북한에서 과연 ‘법의 실효적 지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란 차원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수호를 위한 규범적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경제현실의 변화를 법령에 반영하는 실용주의적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북한 헌법상 국가기관체계는 권력승계를 반영(김일성-김정일-김정은)해 개정돼 왔고, 동시에 외국인투자법제·대외경제법제·특수경제지대법제 등 경제법령의 정비가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의 경제현실의 변화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향후 김정은 체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수령체제의 수호를 위한 정책으로 핵개발과 경제발전의 병진정책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여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소 개방적이고 외국의 현재문물을 적극 수용하기는 하지만, 수령의 유일지배체제의 계승이란 점에서 큰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박정원 과거청산통합연구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의 원장님임과 동시에, 북한법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북한 체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북한의 법을 평가함에 있어, 북한에서 과연 ‘법의 실효적 지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란 차원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사회에서 법치주의의 실현이라는 점과 비교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 북한주민 역시 법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법에 대해 당 정책의 실현수단이라고 하면서 법의 실체와 효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대외적으로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한 법 체제는 규범과 현실의 일치성을 보이는 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헌법상 국가기관체계, 즉 우리의 통치구조에 관한 규정은 권력승계를 반영(김일성-김정일-김정은)하여 개정되어 왔다.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하고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 되었던 것이고,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제1국방위원장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헌법의 개정을 통해 권력개편으로 뒷받침되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경제현실의 변화에 상응하여 필요한 경제법령의 정비를 통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투자법제와 대외경제법제, 특수경제지대법제에서 두드러지게 그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체제수호를 위한 규범적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경제현실의 변화를 법령에 반영하는 실용주의적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외부분에서의 경제법령의 정비는 대내적인 경제법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최근의 북한 법 동향 중에,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최근 북한은 행정체제를 정비하면서 이른바 행정법제에 대한 정비를 확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일부이지만 국정운영을 명령체제에서 법제도화방향으로 전환하여 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법의 변화와 현실반영은 형식적인 면에서 외국인투자법제와 대외경제법제, 그리고 경제특구법제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는 남북경제협력법제로서 개성공단법제와 금강산관광지구법제를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체제수호와 관련해선, 형사법제 등에서 오히려 북한주민에 대한 규범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어 북한이 법을 다루는 입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북한의 경우 2007년 북한의 체제수호를 위한 규범통제의 수단으로 형법부칙을 제정하고 그 내용을 입수하여 연구한 바 있다. 그러나 2007년 이후부터 가장 최근에 공개된 북한의 공식적인 법전인 2014년 북한법령집까지 북한의 형법부칙은 수록된 적이 없으며, 187개의 법률만 수록되어 있는 등 전반적으로 미분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그들의 법제도에 대해서도 비밀주의에 머물고 있으며, 아직 완전하게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북한의 법을 원칙 면에서 비교하여 볼 때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궁극적으로 인권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북한에서 법은 체제수호의 수단으로 작용하며 북한주민의 기본권보장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법령적인 측면에서, 김정은 집권 후 특기할만한 변화가 있는지?
법령변화의 면에서 볼 때, 김정은 체제는 그 체제강화를 위하여 핵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다만 이념적 면에서는 여전히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 기초하여 선대의 유지를 따르고 있다. 다소 개방적이고 외국의 현재문물을 적극 수용하기는 하지만, 수령의 유일지배체제의 계승이란 점에서 큰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7차 당 대회 이후 명실 공히 김정은 시대의 선언으로 김정은 체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수령체제의 수호를 위한 정책으로 핵개발과 경제발전의 병진정책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여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과거청산에 대해 묻겠다. ‘과거청산’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또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과거청산’은 꼭 필요한 것인가?
과거청산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청산이란 과거 내전,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겪었던 국가들에서 발생한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집단학살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채택되어 왔다. 이로부터 실질적인 처리를 도출함으로서 상당한 갈등을 치유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청산은 일반적으로 당해 사건의 발생배경과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당해 사건의 사회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배경과의 연계성, 사건의 특성과 주도세력의 목표와 전개과정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과거사 청산에 있어 모든 당사자를 만족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일수도 있다. 예컨대 특정한 인권유린행위에 대하여 처리하는 방식에 대하여 유엔은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보호책임 ▲국제형사재판소에의 회부 ▲과도기 정의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방법 중 전자 2가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을 통한 해결방식이며, 과거청산에 의한 방법은 과거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하여 해당국가가 직접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의 그 동안의 활동 내용과 성과 등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한다면?
남북한의 통일은 분단의 원인과 그 심화 과정에서 반목과 대립의 골이 깊은 만큼 통일의 이행과정에서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 풀어보기 위하여 2013년 5월부터 ‘과거청산연구회’를 통해 법조계, 학계, 언론, 북한연구 실무· 인권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매달 모여 과거청산의 국내외 사례를 연구해 왔다.
그동안 몇 차례의 국내 및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독일의 과거청산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매월, 연구회를 개최하여 세계 각국의 과거청산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유형과 해결방식에 대하여 공부하기도 했다. 과거청산에 대한 정의·범위·대상을 여러 분야에 걸쳐 논의하면서 최선의 해결방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를 토대로 연구회를 개편하여 2015년 8월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이 공식 발족하게 되었다.
-‘청산’되어야 한다고 규정되는 과거 사건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과거 청산의 주체, 원칙과 방법, 기준과 범위 등에 설명 부탁한다.)
우리는 선행연구를 통하여 개괄적이나마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해진 과거청산의 역사적 경험과 사례를 공부해 왔다. 특히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나타난 다양한 형식의 과거청산사례로부터 사법적·비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과 결과를 고찰해 봤다. 여러 국가의 과거청산사례는 청산의 주체, 방식, 목적, 처벌대상과 처벌수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과거 청산의 성공여부에 따라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과거청산의 성공과 실패는 단정하여 예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청산이 과거 지향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과거청산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와 사건, 행위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해소 및 치유과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토대를 구축하여 가는 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단과 통일 논의 과정에서 ‘과거청산’이란 문제는 어떻게 적용되는가?(구체적 적용 사례가 있다면 설명 부탁한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과거청산의 방법을 통하여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처리를 본다면, 과거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하여 해당국가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권고한 것은 북한의 인권침해와 관련하여 유엔차원에서 다루었던 2013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COI)의 조사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할 임무를 부여받아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조사보고서에서 북한이 행한 인권침해행위가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하여금 북한 내 인권침해 가해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북한을 대상으로 하여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과거청산을 수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소재 판단, 처벌과 보상 내지 배상, 그리고 용서와 화해라는 일련의 과거청산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 밖에 북한의 정권 수립 후의 영역이 아닌 분단 과정에서 북한 당국에 의해 벌어진 청산과제에 대해서도 통일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의 피해에 대한 문제도 통일과정에서 사회통합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이지만 분단의 상황이라는 한계로 인해 현재 많은 논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연구원에서는 이러한 영역까지 연구의 범위로 정하여 논의하고 있다.
-북한이 자행했다고 알려진 반(反) 인도범죄에 관한 규정 및 조사는 피해자 중심일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과 북한 내의 가해자를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한 ‘과거청산’은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유엔이 제시한 북한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식 조사와 해결방법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향후 통일을 고려했을 때 통일국가의 평화와 남북한 국민의 화합·화해를 위해서는 북한에서 자행된 인권침해에 대한 효과적인 처리방법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거청산의 방식에서 그 해결방법으로는 사법적 정의와 비사법적 정의를 포괄하여 말한다. 앞의 방법은 기소에 의한 재판으로 행해지고, 뒤의 방법은 진실규명·보상·기관개혁·공직배제의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과 사면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추진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방식을 통일과정 내지 통일 이후 북한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책임추궁과 청산방법으로 채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통일의 유형과 방식에 있어 불확정성·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인권침해행위를 예로 든다면, 이 행위는 분명히 국제법에 의하여 진실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하는 과거청산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즉각적인 청산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변화에 의해 가능한 접근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를 위한 준비와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이룬 독일의 사례가 궁금하다. 독일에선 어떤 과정을 거쳐 과거청산이 진행됐는지?(과거청산이 독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하다.)
잘 알다시피 독일통일은 구동독주민의 무혈혁명에 의해 촉발되고 동독주민이 원하는 방법으로 완성된 측면이 크다. 다시 말해 구서독기본법 제23조에 의거하여 독일연방체제에 구동독의 주가 편입되는 방식으로 동서독은 통일됐다. 이 과정에서 통일독일의 체제불법 행위자에 대한 과거청산은 구동독의 민주혁명의 주체세력인 구동독주민들의 정의에 대한 요청에 부응하는 제도적 접근방법으로 이뤄졌다. 구동독주민의 의사에 따라 통일독일의 정부가 이를 담당하는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과거청산의 유형은 그 다양성에 따라 분류에는 차이가 있다. 간략하게 보면, 대체로 ▲사면 ▲묵인 ▲형식적 재판에 따른 가혹한 단죄와 처벌 ▲법치국가원리에 따른 가해자 사법처리와 피해자 구제에 이은 원상회복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유형 중에서 독일의 경우는 마지막 유형의 방식으로 체제불법행위자에 대해 사법적 청산의 방식을 택했다.
과거청산방식에서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유형에 비추어 보면, 망각과 가혹한 처단의 방법은 청산을 하지 않거나 또 다른 청산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사법적 정의에 의한 청산을 한 독일사례와 진실과 화해 방식의 남아프리카 방식이 성공적이고 바람직한 사례로 분석되어 있다. 결국, 우리의 선택도 이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독중심의 통일이었다. 혹시 과거청산 과정에서도 서독 중심으로 이런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나? 동서독 주민들 모두가 공감할만한 방법·기준으로 과거청산이 진행된 것인지 궁금하다.
독일의 통일은 구서독 기본법 제23조의 편입방식에 의해 동독이 서독체제로의 편입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정치적 청산이 아니라 사법적 청산의 방식을 택하여 정의의 실현이라는 가치 아래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동독내의 과거청산을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겠다.
1989년 10월 평화시위로 시작된 동독의 개혁은 1990년 3월 18일 첫 민주총선거에 의해 구성된 인민의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입헌질서의 구축과 과거 정권에서 자행된 불법행위에 대한 청산을 위한 입법조치로 이어졌다. 이 내용을 통일조약에 반영하고 구체적인 조치는 통일독일에 위임했다. 이로써 동독에서 이루어진 불법행위의 가해자 처벌은 통일독일의 도덕적인 동시에 법적 의무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제도적 과거청산을 사법적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역시 사회적 실질적 통합문제는 통일 이후에 지속적인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통일 후 15년이 넘은 지금도 동서독의 사회통합문제는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남북한의 과거청산문제는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사례와 화해·협력의 과정을 통한 사례 등을 통해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 나갈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남북한은 동서독과 달리 내전을 겪었다. 다른 나라의 과거청산 사례 중, 내전을 다룬 경우가 있나?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과거청산’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일반적으로 독일과 남북한의 분단과 통일배경의 차이점의 하나로 6.25 전쟁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와 같이 민족의 군사적 충돌에 의한 적대관계가 증폭되는 상황이 없다는 점에서 과거청산의 내용도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동족 간 전쟁이 있었던 우리의 과거청산은 보다 복잡하며 그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은 만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내전 상황을 내용으로 하는 과거청산의 유형도 적지 않다. 캄보디아 사례를 볼 수 있으며, 내전 상황을 포함한 과거청산은 베트남의 사례가 최근 사례에 해당한다. 통일국가의 형태가 북베트남의 사회주의체제로 통일된 경우이지만 이 사례에서도 과거청산은 불가피한 조치로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남북예멘의 경우도 양측의 군사적 충돌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과정 속에서 통일국가를 수립하였고, 통일과정에서 남북예멘의 지난날의 대결적 상황에 대한 통합원칙에의 수용문제 등도 고려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6.25전쟁은 내전적 상황에 국제전의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 그 대응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쟁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명예회복, 전쟁종식에 대한 국제법적인 조치 등이 함께 모색될 수 있다.
-과거청산 논의는 분명히 통일 전후의 사회통합이란 측면과 연결되는 것 같다. 현 시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과거청산’관련 개인적인 고민도 좋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그저 영토의 통합, 체제의 통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통일로 남북한의 주민이 모두 행복해지는 통일국가를 미래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정 주민의 통합, 즉 사람의 통합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형식적 통일(제도적)은 정신(정서)적 통합(실질적)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과거청산이란 이런 점에서 고민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먼저 온 통일’로 일컬어지는 탈북민에 대한 정착제도의 성공은 이를 시험하는 사례일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정착지원제도는 정상적인 사회정착이 이루어짐으로써 성공을 말할 수 있다. 탈북민에 대한 정착지원 과정은 남북통합의 내재적인 문제 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과거청산 사례의 하나로 주목되고 있다. 남북의 통합과정에서 탈북민 사례는 과거청산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 선행적인 경험을 축적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과거청산’에 대한 정부당국·국민의 공감대도 부족한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향후 통일국가에서 북한의 과거청산의 주체가 누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행위주체가 형성되면 과거청산의 수준과 범위, 방법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말할 수 있다. 북한의 과거청산의 주체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클 뿐만 아니라 직접 피해당사자로서 북한주민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북한주민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사전준비작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지역에 대한 인권의식의 함양과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합리적인 과거청산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 현실적인 과거청산의 사례로 일어서고 있는 탈북민의 정착과 지원사업에 대해 관심은 그 해법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다. 탈북민 사례는 남북의 내재적인 문제 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과거청산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는 점을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연결되는 질문이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사회통합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공과 민간이 각각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영역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또 그 필요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 문제 해결이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정부와 민간부문에서 상당히 이를 위한 대안모색에 고민하여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부와 민간의 협업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찾는 데에서 그 방향을 잡을 수 있겠다. 북한에 대한 과거청산의 문제는 매우 특수한 사정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의 대내외적 대응방향은 민간과 정부의 역할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정부와 민간의 협력체제 관점에서 과거청산이라는 주제를 고려한다면 올해 제정된 북한인권법의 제정과 이에 따른 실천문제를 들 수 있겠다. 북한인권기록관리의 활용방안과 관련한 문제에서 구체적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은 향후 어떤 활동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남북한의 내적 통일의 완성을 위한 북한의 과거청산문제는 한 방향에서의 일방적 통행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국내외의 다양한 과거청산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과거청산의 원칙과 처벌수준 및 범위에 대한 결정이 일방적 힘에 의해 좌우된다면 결코 과거청산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었다. 양극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논쟁은 불가피할 것이며, 갈등의 심화는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감소시키고 갈등국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중립적인 성격으로 과거청산문제를 다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통일과 통합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문제는 새로운 환경에서 생소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과거청산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민간부문에서는 그 대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정부와 민간은 협업을 통해 과거청산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는 독재청산재단의 설립과 운영방식을 검토하고, 통일을 위한 시민교육의 성과를 분석하고 우리에게 원용할 수 있는 점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청산에 대한 국내외사례의 연구, 대외적 연구협력체계를 갖춤으로써 우리의 통일과 통합에 기여하는 역할과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바로 우리 연구원의 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의 바람직한 과거청산의 방향을 정하고 그 대안을 찾는 것과 함께 대외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국제적인 활동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