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간부 ‘보신주의’ 부메랑, 결국 김정일에 꽂히나?

김정일의 용인술은 ‘도 아니면 모’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용인해주되, 조금이라도 충성심이 의심스러워지면 모든 것을 박탈해 버린다. 이런 양극단을 병행하며 간부들을 상대로하는 ‘공포정치’를 펼친다. 자신을 ‘공포스러운 존재’로 끊임 없이 부각시키면서 간부들의 충성을 강요한다.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이 만들어낸 ‘충성’ 문화가 말단 간부계층까지 확산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직속 상급간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올 인(All-in) 문화’가 보편화됐다. 통상 한국 사람들은 다층적인 인간관계를 선호한다. 회사 조직생활에서도 직속상관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 학연, 지연 등을 총동원해 가능한 다양한 인맥을 형성해놓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험’ 심리와 같다. 그러나 북한은 완전히 다르다.


김정일을 정점으로 하는 조직구조속에서 간부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느 누군가 밑에 줄을 서게 된다. 오직 김정일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는 권력구조안에서 간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한경쟁’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부들간 경쟁의 기준이 능력과 경험이 아니라 김정일 개인에 대한 ‘충성도’에 좌우되는 상황이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라도 누군가 뒤에 줄을 서야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라인의 최고 간부가 철직되면 그가 후원해줬던 아랫 간부들도 줄줄이 옷을 벗어야 한다. 죄가 사면되서 다시 간부직에 복원될 때도 마찬가지다. 집단 철직, 집단 복직이다. 2000년대 김정일의 처남 장성택의 철직과 복귀 과정에서 수십~수백명의 간부들이 동시에 철직, 복귀 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직속상관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올-인 문화는 간부들의 부정부패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직속상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상급 간부의 용돈, 유흥, 가정생활을 보조하는 뇌물 뿐 아니라 상급간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활동에도 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급 연합기업소 당 지배인에게 줄을 선 간부는 김일성-김정일 생일마다 김일성화(花), 김정일화(花)를 미리 준비해 상급단위에 지배인 명의로 제출한다. 이런 일들에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상급 간부가 철직되면 어차피 함께 옷을 벗어야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때 최대한 재산을 불려두자”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언제 날아갈 지 모를 위태로운 간부자리에서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 노후를 위해서나, 혹은 검열에 걸렸을 때 빠져나오기 위해서나 가장 절실한 것은 ‘돈’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만도 명분상 수령과 당, 조국과 인민을 위해 가장 헌신하는 자들을 간부로 선발한다는 원칙이 유지됐다. 간부 선출의 기본핵심은 당연히 출신성분이지만, 여기에 수령-당-대중에 대한 종합적인 충성심과 더불어 일정한 능력과 경험까지 요구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특히 간부들에게 ‘머슴다운 품성’이 강조되면서, ‘간부는 인민의 머슴’이라는 슬로건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간부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 수령-당-인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복무정신’이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되도록 교양됐다.


1980년대까지는 은퇴한 당 간부가 여생을 빈곤하게 보내는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간부로 일하는 동안 고지식하게 일만 하다보니 노후 준비를 소홀히 한 탓이다. 물론 당시에도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간부들이 적지 않았으나, 최소한 겉모습이라도 ‘빈곤’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 시기 눈치 빠른 간부들이 주목했던 것은 연로보장금제도다. 이 제도는 공로자자격을 획득한 자들에 한해 정년퇴직 후 배급 600g(1일분) 매달 60원의 연로보장금을 지급해주는 것이었다. 선정대상은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은 자와 ‘영웅’ 칭호자, 국기훈장(노력훈장과 공로메달 포함) 5개 이상을 받은 자 등이다.


그런데 공장기업소 지배인 혹은 당비서 이상급 간부가 되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후보자가 된다. 해마다 김일성 생일 등 국가명절 때마다 훈장수여식이 열리기 때문에 이들은 거의 대부분 연로보장금 대상에 이름을 올릴 기회를 갖는다. 


훈장 추천·수여는 시군 인민위원회 표창지도원이 담당하는데, 추천이 진행될 때 우선적으로 간부들에게 차려지도록 내정해 ‘나눠먹기’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중상급 간부들은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정년퇴직에 맞춰 훈장수여를 받게 되며 연로보장금으로 편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화는 김정일 집권이후, 구체적으로는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크게 변질되고 말았다. ‘고난의 행군’ 초반기 까지(1995~96년) 간부들의 자존심과 긍지가 그나마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한 통계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당시 일반백성들의 아사비율 대비 당원 및 간부들의 아사비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당원과 간부들은 인민보다 더 견결하게 당과 국가를 신뢰해야하며, ‘당원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굶어죽더라도 식량을 구걸하러다니거나 장사에 나서는 등의 ‘비(非)사회주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비장한 결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식 ‘1인 충성주의’가 확산되고, 2000년대 물질만능주의까지 더해지면서 돈과 물질에 대한 간부들의 욕망은 끝없이 높아졌다. ‘물질욕’이 ‘명예욕’을 앞지르게 된 것이다. 특히 북한 당국의 공급능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연로보장금제도’는 실제 운영이 중단되었고, 설사 운영 된다하더라도 가파른 물가상승 때문에 별다른 매력이 없었다.  
 
결국 간부들은 2000년대 이후 ‘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돈은 권력의 부수입이 아닌, 권력의 주요 동기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간부들의 보신주의(保身主議)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80년대 간부들의 보신주의가 “별다른 과오 없이 정년퇴임하자”정도였다면, 2000년대 보신주의는 “상급 간부 눈밖에 나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해도 된다”는 식의 적극적인 기회주의로 나타났다. 국가 법이나 도덕 준칙은 더이상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상급간부에게만 안걸리면 나머지는 ‘자기 능력’ 문제였다. 


80년대까지 북한 간부들의 철직 사유가 부적절한 애정관계나 생산목표 달성 실패 등 직무상 ‘과오’에 집중되었었던 것에 비해 2000년대 이후 간부들의 철직 사유는 주로 마약, 밀수, 공금횡령 등 개인 경제비리에 모아졌다.  


간부들의 비리와 부정이 늘어날 수록 상급간부에 대한 의존과 충성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 믿을 것이라곤 결국 상급 간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간부들은 ‘줄타기’의 도사들이다. 김정일 및 상급 간부의 권위를 세워주는 요령, 중앙당의 집중 검열을 피하는 감각, 정적(政敵)들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준비성, 북한의 법망을 피해가는 능력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북한 간부들의 보신주의는 친척이나 지인들에 대한 ‘몰인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기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는 무수히 많다. 때문에 혹시나 친척이나 지인들의 비법행위가 자신의 흠이 될까 두려워 이들과의 인간관계도 냉정하게 처리한다. 요즘 북한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록 더 매정해진다”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다.


간부들의 보신주의와 비리가 만연되자 이제는 정적을 제거하거나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할 때도 ‘부정과 비리’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지난해 11.30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지난 3월 총살한 박남기 노동당 재정경리부장에게는 “화폐개혁 직전 미리 정보를 측근들에게 흘려 구화폐를 대거 처분하고 달러를 확보 등 비법적으로 개인재산을 늘렸다”는 죄목이 추가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간부들의 보신주의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김정일이다. 상급 간부에게만 잘보여 돈이나 왕창 모으려는 간부들이 김정일의 지시를 성심성의껏 집행할리 만무하다. 결과적으로 보신주의에 빠진 간부들은 ‘수령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또 이런 간부들의 비리가 인민들에게 폭로될 경우 주민들의 반발이 김정일을 향하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북한 주민들은 “간부들은 나쁜 놈들, 이 놈들은 장군님(김정일)까지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정치를 잘해보려고 하는데 중간에서 간부들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부들의 비리와 무능이 장기화 되면서 이제는 “장군님께서는 어째 꼭 저런 놈들만 높은 자리에 앉히신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김정일 체제유지에 주요 동력이었던 간부들이 이제는 김정일 권위를 갉아먹는 해충역할을 하고 있다. 예고된 부메랑이다. 다만 20년 넘게 보신주의에 훈련된 북한 간부층이 어느 한순간 김정일에게 등을 돌릴지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그 임계점이 점점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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