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간부들의 고민…”황장엽 남한 망명 왜?”

지난 10일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타계는 국내 탈북자 사회에도 큰 슬픔을 던졌다.


황 위원장과 함께 탈북자동지회 사업을 함께 했던 홍순경 회장은 “비통한 심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면서 “북한 민주화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 것이 애통하고 가슴아프다”고 목메어 말했다.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황 위원장은 지금까지 탈북자들과 북한 민주화운동의 대부(代父)로 활동해왔다”면서 ”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안목으로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에 입국하고 나서야 황 위원장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뜬다. 1997년 당시 북한 땅 전역이 아사자로 넘쳐나던 시절, 북한 주민들에게 황 위원장의 한국행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황 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 수준은 대략 다음과 같다.


“황장엽은 원래 우리 혁명 투쟁의 대상으로 규정한 ‘대지주’ 집안의 출신이다. 그는 대지주의 아들이었지만 양심적 지주 집안으로 분류되어 숙청되지 않고 오히려 수령님(김일성)과 노동당의 관대한 정책에 따라 모스크바 유학까지 다녀와 국가의 주요직에서 일했다.


황장엽이 이처럼 신임을 받게 된 원인은 해방 후 새조국 건설시기 경제에 밝은 인재가 귀했기 때문이다. 황장엽은 비록 지주 집안 출신이지만 양심적이고 경제에 누구보다 밝기 때문에 국가의 귀중한 인재로 발탁되어 체계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간부로 등용됐다.


그러나 1997년, 수령님이 서거하고 장군님(김정일) 혼자 사회주의를 지키느라 애쓰는데 황장엽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나라를 배반하고 일가족까지 모두 버린 채 도망쳤다.”


북한 간부들은 출신성분을 들먹였다. 마치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 안에 ‘혁명적 요소’와 ‘반혁명적인 요소’가 제각각 담겨 있는 것처럼 “출신성분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주민들에게 강조했다.


인민반과 직장 별로 열린 정치강연회에 나선 간부들은 “배신자는 갈테면 가라 하고 우리는 끝까지 당과 장군님을 따라 사회주의 조국을 지킬 것”이라며 주민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당시 황 위원장의 탈북은 일반 주민들에게 커다란 분노와 상실감을 던져 줬다. 많은 주민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황 위원장의 일가(一家)를 모조리 숙청 처벌 했던 것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황장엽이 달아나는 바람에 사돈의 팔촌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통제구역'(정치범수용소)으로 보내졌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주민들 사이에 퍼지는 ‘공포심리’가 싫지는 않았는지 간부들 조차 이런 소문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부집단의 반응은 약간 달랐다. 물론 공개적으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상당수의 간부들이 그의 행보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을 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함경북도에서 당 간부로 일했던 한 탈북자는 “당시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배려도 제일 많았고, 최고 권력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뭐가 부족해서 목숨을 걸고 조국을 배신하는 길에 나섰을까라는 의문이 회자됐다”며 “특히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 시절 그의 학자적 기풍과 태도를 직접 목격했던 제자들은 이런 고민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죽는 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던’ 이는 황 위원장이 유일하다. 적지 않은 사람이 김일성-김정일 체제 아래서 소리없이 죽어 갔지만 황 위원장 같은 공개적인 인물은 처음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황 위원장은 북한의 많은 간부들에게 현재 그들의 상황으로는 ‘알 수 없는 미스테리’를 남겼다.


일단 황 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재평가는 김정일-김정은 체제 몰락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인식과 결심을 북한 주민들에게 온전히 전해줄 사람들은 국내 탈북자들 밖에 없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대북전단이나 대북방송 등을 통해 황 선생님의 망명 배경과 이후 활동 업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극 전달하는 활동을 검토해 볼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황 선생님은 북한의 1인 우상 숭배에 넌더리를 냈던 분이시라 자신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부각되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기피하셨다”면서 “이제 황 선생님이 남기신 유산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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