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送장기수들, 결국 ‘김정일 찬양조’로 전락







▲북송장기수 22명이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 등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사진=동영상 캡처>

김대중 정부 당시인 지난 2000년 9월 북송됐던 비전향장기수들이 북한체제 선전단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데일리NK가 최근 입수했다.


지난 2월15일(김정일 생일 전날) 촬영된 이 동영상에는 인민군 출신으로 최장기간인 45년간 복역생활했던 김선명, 북송 이후 연구에 전념해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선전됐던 김중종, 북송후 결혼생활로 딸을 낳은 이재룡, 음악가동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김창원·이경찬·우용각·고광인·이경찬·이두균 등 22명의 장기수들을 확인할 수 있다.

북송 장기수 중 현재까지 10여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생존자 50여명 중 22명이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수들 거의가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선전단 활동이 가능한 체력의 장기수 대부분이 선전단 활동에 참가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평양시 평천구역에 위치한 공연장 ‘운정관’에서 약 80분간 이뤄진 이 공연은 김정일 체제의 우월성과 남한 사회에 대한 비난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무대 상단에는 ‘위대한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는 구호가, 측면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1, 2부로 구성된 공연에서 장기수들은 각자가 맡은 사회, 구호제창, 지휘, 연설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1부는 김중종 씨외 1명이 ‘북한에서의 배려된 삶’과 ‘남한에서의 옥중 생활’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2부는 장기수와 그의 가족들이 출연해 합창, 중창, 독창, 자작시 낭송 등 11개의 문화공연을 진행하며 공연에 앞서 그들의 사연 소개를 통해 체제 선전도 함께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장기간 복역한 김선명 씨 등 4명은 부인들과 노래공연을 펼쳤다. 무대 위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사진=동영상 캡처>
복역기간이 긴 4명의 장기수들과 부인들로 구성된 노래공연도 이어지는데, 공연에 앞서 사회자 장기수 김동기 씨는 최장기간(45년 복역) 복역한 장기수 김선명 씨에 대해 “신라, 고려, 이조시대 3대왕족에서 고관내력을 지낸 가문(출신)이다. 이조시대 할아버지 관직은 병조판서, 할머니는 막내딸인 공주였다. 이런 가문에서 태어난 김선명 동지는 사회주의자가 되고, 또한 비전향 장기수가 되고, 세계 최장기수가 됐다. 이건 우리 당이 얼마나 위대한 당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다소 엉뚱한 내용으로 노동당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한 사람, 혁명이 무엇인지 알게 한 사람’이란 가사 내용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사랑의 화신’인 김정일이 있었기에 그들이 오랜 감옥생활을 이겨냈다는 내용을 암시한다.








▲북송장기수 이재룡 씨와 부인이 김정일이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는 딸 축복이와 함께 ‘축복받은 나의 삶’을 합창하고 있다. <사진=동영상캡처>


이후 북송 후 결혼해 딸자식을 낳은 장기수 이재룡 씨는 부인 김금순 씨, 딸 축복 양과 함께 나와 가족창(唱)으로 이인모(북송 1호 장기수) 씨의 작사곡 ‘축복받은 나의 삶’을 부른다.


사회자 김동기 씨는 “한국에서 영원한 총각으로 될 뻔했던 이재룡 동지는 조국에서 새가정을 이루어 귀여운 딸을 보았다”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딸이름을 축복이라 지어주신 친필서한까지 보내주셨다”고 이재룡 가족을 소개했다.


이 공연에서 장기수 부인들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부인들은 한복 차림으로 장기수 전체와 함께하는 혼성창에 참여하기도 하고, 1~4가족 소규모 단위의 공연에 참여한다. 또 여성들로만 이뤄진 중창도 이뤄지며 정장차림으로 나와 기타와 아코디언 등을 연주하기도 했다.

동영상을 전한 북한 내부소식통은 “이들은 모두 평양시 평촌구역 안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거주지에 가까운 곳에 소규모 강당인 ‘운정관’을 만들어 그곳에서 해외동포, 인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육 차원의 강연과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공연일정과 관련 김정일 생일(2.16), 김일성 생일(4.15), 공화국창건일(9.9) 등 북한의 주요 정치기념을 전후해 수일씩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동포방문단이 공연을 관람할 경우에는 “고생한 비전향장기수들을 그냥 방문할 수 없지 않느냐”며 후원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해외동포원회위원회가 장기수들의 공연을 외화벌이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중종 씨는 ‘북한에서의 배려된 삶’이란 주제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동영상캡처>

강연에 나선 김중종 씨는 북송돼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김 씨는 강연에서 “백두산을 2번 갔다왔고, 공화국 방방곳곳을 다 돌아다녀 봤다”며 “과거와는 천양지 차이가 있다”고 북한의 발전상을 선전했다.


김 씨는 또 북송 직전 2000년 8월 12일 마지막으로 고향(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을 방문했다면서 남한이 북한보다 낙후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1950년대 고향과 비교해서) 오히려 현대 고향이 더 낙후됐다”며 “그런 농촌, 공화국(북한에는) 아무 곳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부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대로 기와집에 이밥에 고기국 먹고 살날을 기대하면서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전부 분투하고 있다”면서 “2012년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백돌이라하는.. 분명히 강성대국의 문패을 단단히 붙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기수 리두균 씨는 ‘나의 어머니시여’이라는 자작시 낭송에서 “수십년 세월, 이 아들을 기다려온 그런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그 어머니, 붉은 당원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중략) 영원히 끝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아 위대한 김정일의 동지여. 나는 영원히 어머니로 모시렵니다”라고 노골적으로 찬양했다.


소식통은 “막내 동생뻘도 안되는 김정일을 향해 ‘아버지’ ‘어머니’라고 칭송하는 것을 관람한 것을 지켜본 해외동포들 조차 ‘저건 좀 심하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며 “북송 당시에는 ‘공화국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결국 김정일 찬양조로 전락해 불행한 인생 말년(末年)을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수들은 끝으로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 등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 중간에는 김정일을 찬양하는 구호 등을 외치기도 했다. 


“아~~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 온나라 대가정의 아버지되여. 우리들을 키워주신 분, 하루도 마음편히 쉬지 못하고 로고를 바쳤습니다. 아버지장군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 1절)

아~~혁명의 수뇌부 천만이 총폭탄되어 결사옹위하리라. 우리가 틀어잡은 총검마다엔 장군님 보위해갈 맹세가 비꼈다. 붉은기 날리는 혁명의 수뇌부 천만이 총폭탄되어 결사옹위하리라.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 1절)”









▲북한은 장기수 송환을 기념해 63명의 사진과 옥중투쟁기간을 명시한 기념우표를 2000년 12월 20일 제작했다. ⓒ데일리NK

한편 장기수들의 북송 결정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돼 그해 9월 2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이 이뤄졌다. 남북은 6·15공동선언 3항에서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바 있다.


북송 장기수들은 빨치산 출신 13명, 간첩 출신 46명, 인민군 출신 4명으로 70% 이상이 남파간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