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입장불변…6자회담 조기재개 힘들 듯

도쿄(東京)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북미가 기존 입장을 고수해 회동이 불발됨에 따라 당분간 북핵 6자회담 재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에 이어 다음달 8일부터 북한 선박으로 제재를 확대할 예정이고 일본도 납북된 요코타 메구미씨 사건과 관련해 대북압박을 강화할 의지를 비치고 있어 이번 북미 회동 불발이 6자회담 재개의 모멘텀 상실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의를 계기로 북한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을 포함, 위폐 문제와 관련해 대충 넘어갈 수는 없다는 ‘엄중한’ 상황을 재확인하는 현실인식을 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없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본국에 돌아가 이와 관련한 보고를 있는 그대로 상층부에 하게 되면 적어도 BDA 제재 해제 주장에 대한 재검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도 의도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기피했다는 점에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대화에 나오는 것 자체를 조건으로 내건 것을 강력하게 비판해왔으나 이번에는 북한은 대화를 강하게 희망한 반면 미국은 이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도쿄 회동은 작년 11월 제5차 1단계 6자회담 이후 5개월 만에 6자회담 수석대표 대부분이 모이는 사실상의 ‘장외 회담’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민간 주도의 학술회의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의 당국자들이 참여하는 ‘1.5트랙’ 모임에 불과한 도쿄 NEACD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한중 양국의 중재로 북미 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참여 의지를 밝히면서 회담 재개와 진전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BDA를 포함한 위폐 문제와 관련, 초기에는 사실무근이라고 잡아뗐던 북한이 지난 달 7일 뉴욕접촉에서 일정 수준에서 책임을 인정하며 재발방지 차원에서 북미간 비상설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나선 터여서 이보다 더 진전된 카드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2천400만달러가 예치된 자국의 BDA 계좌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을 경우 회담에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서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NEACD 회의장인 도쿄 시내의 미타 하우스에서 아무 말 없이 ‘1분간 조우’하는데 그쳤다.

힐 차관보의 ‘좁은’ 입지가 북미회동 불발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힐 차관보를 중심으로 한 미국내 북핵 협상파는 작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 ‘너무 많은 것을 줬다’는 비난에 직면했으며 지난 1월과 3월 베이징(北京)과 뉴욕에서의 북미 회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가 없는 것에 워싱턴 정가가 못마땅해 했고 이 때문에 힐 차관보가 국무부와 백악관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측의 수석대표인 천영우(千英宇)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8일 도쿄 도착 이후 김 부상과 힐 차관보를 각각 수차례에 걸쳐 공식, 비공식으로 만나 북미 회동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불발됐다.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도 11일 저녁 도쿄 시내의 자국 대사관에서 북.중.미 회동을 계획하고 먼저 북한의 김 부상과 회동한 뒤 미국의 힐 차관보를 기다리는 승부수를 뒀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끝났다.

김 부상은 북중 접촉후에도 수십분 가량을 기다렸으나 힐 차관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상이 13일 귀국할 예정이고 힐 차관보가 이날 오후 서울로 향한다는 점에서 시간상으로는 회동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할 수 있으나 도쿄 현지에서는 ‘회동은 이미 물건너갔다’는 분위기가 역력해 보인다.

정부 안팎에서는 오는 18∼29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통한 미중정상회담이 북핵 6자회담 재개와 진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도쿄 회동에서 북미 양측이 서로 분명하게 입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역할도 제한될 수 밖에 없어 미중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가 외교 테이블에서의 협상보다 북한의 핵포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기세를 높일 태세여서 북한이 이에 대응하고 나설 경우 당분간 북핵 6자회담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핵문제가 장기간 정체되고 북미간에 대결이 구조화되는 현재의 상황을 돌파하려면 현실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따라서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북핵과 위폐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1∼24일 평양에서 열릴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