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2·13합의 굴곡의 1년…北 꿍꿍이셈은 뭔가?

▲ 영변 원자로 위성 사진 ⓒ연합뉴스

북한 핵 폐기를 위한 초기 조치 내용을 담은 ‘2.13 합의’가 채택된 지 13일로 꼭 1년이 됐다. 2.13합의는 2005년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17개월 만에 나온 이른바 핵 폐기 이행 초기 로드맵에 해당한다.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 이후에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계좌를 동결하면서 6자회담은 1년이 넘게 공전됐다. 2007년 1월 미국이 북한과 베를린에서 회동을 갖고 BDA에 동결된 북한 계좌를 풀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9.19합의는 공전 상태를 끝내고 2.13합의라는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하게 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어렵게 타결된 2.13 합의는 9.19공동성명과는 달리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조치와 신고 문제를 합의서에 명시했다. 이것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돼 당시 일각에서는 북핵 폐기가 완료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2.13합의의 주요 내용은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shut down).봉인(seal)하면 나머지 5개국은 중유 5만t을 제공하고, 북한이 2단계(불능화.신고) 조치를 이행하는데 맞춰 중유 95만t에 상응하는 경제.에너지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및 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BDA에 동결돼 있던 북한의 불법자금을 풀어주는데 넉 달 가량이 소요되면서 그동안 비핵화 로드맵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6월에 가서야 BDA 문제가 해결되면서 영변 5MW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이 55개월 만에 가동 중단돼 폐쇄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쇄.봉인 조치가 완료됨에 따라 6자회담국들은 제6차 2단계 회의를 통해 비핵화 2단계 조치를 논의했다. 이에 따라 관련국들은 비핵화 2단계 조치인 ‘불능화(disablement)’와 ‘신고’ 이행 방안을 담은 ‘10.3 합의’를 최종 채택했다.

10.3 합의는 영변의 5㎿ 실험용 원자로,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 및 핵 연료봉 제조시설 등 3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해 2007년 12월31일까지 불능화를 완료하기로 했다. 또한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도 연말까지 하기로 명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의 조치들과 병렬적으로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나가기로 했다. 2.13합의에 따라,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이미 전달된 10만t 중유 포함)도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은 10.3 합의에서 약속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 시한을 끝내 지키지 않았다. 40일이 지난 지금 북한은 11개의 항목의 불능화 조치 중 8개가 완료되고 9번째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5MW 원자로의 8천 개에 달하는 폐연료봉 인출 작업이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핵 신고와 관련해선,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의혹과 플루토늄 추출량, 북-시리아 간 핵커넥션 의혹 등 북한이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북한은 이를 두고 지난 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 신고를 11월에 이미 완료했다’ ‘수입 알루미늄관을 이용한 군사시설을 미국 측에 참관시켰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은 이미 행동을 취했다고 버티는 상황이다.

또한 북한은 담화에서 “다른 참가국들의 의무사항인 중유와 에네르기(에너지) 관련 설비, 자재 납입이 절반도 실현되지 않은 상태”라며 “월별 중유납입 일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으며 에네르기 관련 설비, 자재 납입과 관련한 실무적 공정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른 참가국들의 의무이행이 늦어지고 있는 조건에서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라 최근 핵시설의 무력화 작업 속도도 불가피하게 일부 조절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북한의 불능화.신고 관련 상응조치로 미국, 중국, 러시아가 나눠 공급한 중유가 14만6천t이고, 한국이 공급한 철강재가 5천10t(약 40여억 원) 등으로 북한에 제공해야할 중유 95만t 중 약 16%밖에 제공하지 않은 상태다.

사실 북한은 당초 자국의 중유 저장능력 등을 감안, 중유 및 설비 제공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던 입장이었다. 하지만 핵신고 문제를 놓고 6자회담이 교착상태로 빠지게 되면서 관련국들의 중유 제공 지연을 문제 삼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플루토늄 추출량과 관련해선, 작년 12월 북한을 방문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플루토늄 추출량이 약 30㎏이라고 밝혔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는 지난달 30일 매사추세츠 암허스트대학에서의 강연에서 북한이 30~4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북한이 5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 차관보가 ‘플루토늄 30~40kg 보유’ 발언을 한 것은 핵 신고와 관련, 북한에 융통성 있는 접근을 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로 보인다.

게다가 힐 차관보는 “우리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개발했다는 것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UEP 문제도 북한 측이 미국의 의혹을 풀어주는 정도면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외교가의 해석이 뒤따랐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지난달 30일 ‘북한: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마치면 미국이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나 적성국교역금지법 해제 중 하나를 해주고,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를 마친 뒤 나머지도 해주는 단계적 방안을 가능한 해법의 하나로 제시했다.

또한 중앙일보도 지난달 29일 워싱턴 소식통의 말을 인용 “북한이 신고서에 UEP와 핵 확산 의혹은 비공식(private) 채널에서 계속 논의한다’는 주석(footnote)을 명기해 북한에 제안할 것”이라며 “(북한이 이 제안에)동의한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신고 내용으로 주장해온 플루토늄(약30kg) 신고만으로 신고를 받아들여 돌파구를 연다는 계획”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때문에 외교가 안팎에선 부시 행정부가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할지 주시하고 있다. 물론 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단계적 접근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최종 키(key)는 김정일이 쥐고 있는 상황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한은 지금 6자회담의 진전을 크게 바라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무작정 현재의 교착상태를 지속시키기에는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또 다른 선택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UEP와 관련해서도 최초 ‘고농축우라늄(HEU)’에서 ‘다운 플레이(down play)’를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북한은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며 “북한이 지금처럼 무작정 버틸 수도 있지만 6자회담의 부분적 진전을 위한 미봉책을 제시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2.13합의 체결 이후 부시 대통령이 친서까지 보내며 임기 내에 북핵 문제의 의미 있는 진전을 희망했지만, 북한은 임기 만료를 1년 앞둔 부시 행정부에게 큰 선물을 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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