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16년’ 총결산하고 근본 해결책 세워야 한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했다.

미국 국무부는 12일 새벽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하고, 이에 따라 북한이 핵불능화 작업에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10월 초 사흘간 북한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사이에 이뤄진 합의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최종 승인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보수파의 반발뿐 아니라 납치 피해자 선(先) 해결을 요구해온 일본 정부의 요구까지 외면하면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강행했다. 부시 대통령 임기 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북핵 불능화)까지 마무리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은 쌍방간 테러지원국 해제 유보와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카드를 맞대며 두 달 넘게 팽팽한 대립을 지속해 왔다.

그동안 미 국무부 관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하고 완전한 검증’을 북핵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천명했다. 하루하루 임기가 줄어들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 곤혹스러울 것이라는 짐작을 하면서도 우리는 미 국무부의 밝힌 원칙이 그야말로 ‘원칙’으로 지켜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미-북이 합의했다는 내용의 문구를 뜯어보면 이것이 과연 ‘철저하고 완전한 검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신고된 영변 핵시설의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신고되지 않은 핵확산 및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분리해서 검증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미신고 대상과 관련해서는 ‘상호 동의하에 접근한다’는 어정쩡한 전제를 달아놓아 향후 북한이 ‘무조건 우리 동의를 받아라’라고 고집할 개연성을 열어주고 말았다. 북한에게 ‘조건부 해제’라는 단서가 얼마나 강력한 제어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힐 차관보는 지난 9월 한 미 일 중 베이징 수석대표 회동 때까지만 해도 “북핵 검증에는 시료(샘플) 채취와 미신고 시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북한 특유의 ‘시간 끌기’ 전술에 밀려 핵심 사항을 다 내주고 말았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 8년에 클린턴 행정부 8년까지 합쳐, 총 16년 간 미국의 ‘단계론적 접근’은 결국 ‘북한 핵 해결’에 실패했다. 앞으로 ‘검증-폐기’라는 3단계가 남아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겠지만, 지난 16년 동안 북한은 제네바 합의 파기-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개발-핵실험을 거치며 이제는 ‘핵보유국 인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김정일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속여가면서 ‘핵 계획’을 ‘핵 보유’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북한이 3단계에서 다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

‘조선반도 비핵화’를 운운하며 틈날 때마다 ‘주한미군의 핵무기 동시 사찰’까지 언급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가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불완전하고 불투명한 검증안이 향후 6자회담에서 추인된다면, 결국 북한의 나쁜 행동을 용인해주는 결과로 귀결돼 핵 폐기는 고사하고 검증조차 언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제부터 절실한 것은 한국 정부의 냉정한 상황판단과 장기적인 안목이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계기로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만 상대하려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이 더욱 노골화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에게 ‘너희들이 지난 10년처럼 우리에게 퍼주기 지원을 해주면 적당한 선에서 북남간 대화는 윤허해줄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지난 16년간 북핵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어 지금까지 왔는지를 냉정하게 다시 살피고 북핵 문제 해결방안을 원점에서부터 새로 생각해야 한다.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핵 레드 라인은 ‘현 상태에서 동결’-‘CVID’-‘핵 실험은 용납 못해’-‘핵 확산은 금지’ 등으로 한발두발 밀려나면서 끝내 이 지경까지 왔다. 앞으로 남은 숙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노림수를 어떻게 막아내느냐’라는, 완전히 피동적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북핵문제는 국제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단독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다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보면 북핵문제는 한국정부가 단독으로라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북한 핵이 현실적으로 미국을 때릴 수 있나, 중국을 때릴 수 있나? 일본도 3~6개월이면 북한보다 훨씬 양질의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북한 핵에 인질로 잡힌 당사자는 휴전선 이남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런 엄연한 현실도 모르고 ‘북한 핵은 협상용’(김대중, 노무현)이니, ‘역지사지 해보면 북한의 핵개발은 일리 있다’(노무현)느니 하면서, 거의 제정신이 아닌 소리를 해온 것이 바로 지난 10년 한국 정부였다.

이제부터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근원적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골몰해야 한다. 그것은 김정일 정권이 개방정부로 정권교체가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북핵문제와 관련한 남한의 3류 전문가들의 의견을 깡그리 지워버리고 완전히 각성된 상태에서 새로 북핵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사실 시간도 별로 없다. 어영부영 지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좌파 진영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운운하는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