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향방, 차기대선 누가 유리한가?

9.19 북핵 공동성명 직후 실시된 문화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긍정·21.2%) ▲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의 계기는 마련했으나 미흡 (유보·33.5%) ▲불완전한 타협의 산물로 지켜지기 어려운 합의문(부정·38.2%)이라고 답해 70%가 넘는 사람들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이다.

예상 밖의 냉랭한 반응인데, 경수로를 먼저 받아야만 핵폐기를 하겠다는 북한의 발언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벌써 판을 깨려고 한다는 인상 때문에 합의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늘어났을 것이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경수로를 먼저 제공받아야 한다’는 북한 입장은 27.9%가 지지하고 先 핵폐기를 주장하는 미국입장은 60.8%가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이례적으로 미국 지지가 압도적이다.

김정일, 對日 청구권에 군침

이번 북핵합의문에 대한 불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워싱턴포스트가 6개항의 합의문 중에 무려 11개를 모호한 문구라고 지적하고 있듯이 합의문의 모호성으로 인한 것이다. 이 모호성이 결국 지루한 논쟁만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다. 두 번째는 북한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다. 김정일의 기왕의 핵에 대한 집착을 볼 때 시간벌기가 뻔하다는 것이다.

합의문이 모호한 문구 투성이고 김정일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김정일의 핵포기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 이번 합의내용이 북한에게는 대단히 많은 대가를 약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속단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포기로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우선 전기와 경수로가 있는데 가장 군침을 흘리는 대목은 북일관계 정상화의 대가로 받게 될 식민지피해 보상금일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전례를 들며 이자와 인플레를 계산해 10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수상의 방북때 치명적 약점인 일본인 납치를 시인할 정도로 김정일의 이 돈에 대한 욕심은 대단하다.

아울러 북한은 합의문에 담겨있는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주한미군문제와 한미 군사동맹체제를 이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결국 이번 합의에서 북한은 핵동결만으로 대가를 달라는 단 한 가지 주장만을 포기했을 뿐 기왕에 요구하던 거의 모든 것을 관철시켰다. 역으로 미국은 핵포기의 관철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한 것이다.

시간벌기와 핵포기, 두 가지 가능성

개인적으로 김정일의 핵에 대한 집착의 강도로 보아 핵포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나 김정일의 최대 관심사는 독점적 권력의 유지이고 핵은 그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핵보유 고집이 오히려 정권유지에 불리해지면 다른 선택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핵 합의는 두 가지 다른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았다고 판단된다. 즉 북한의 시간벌기와 핵포기이다. 김정일은 핵포기의 대가와 핵보유와의 유불리에 대한 저울질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다. 이번 합의로 인한 한 가지 명백한 상황변화는 북한이 기왕에 핵포기를 약속한 마당에 다시 이를 뒤집을 때는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미국의 제재수단이 제한적이며, 중국도 그렇게 단호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가능하다. 미국이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는 정도일 것이며, 이라크사태의 장기화 등을 볼 때 사실상 군사적 카드는 배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설사 유엔에서 대북경제 제재가 결정되더라도 중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이행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북핵 향방, 차기 대선에 누가 유리?

한편 북핵문제가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 모두들 민감하다. 예컨대 여권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정동영장관이 대권을 겨냥하여 북핵을 주제로 공을 세우는데 올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북핵의 향방이 국내정치 특히 차기대선에 미칠 영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북핵 타결이 꼭 여당에 유리하다거나 역으로 북핵이 미궁에 빠지는 것이 반드시 한나라당에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향후 북한의 핵포기로 결론이 났다고 해서 과연 정장관의 지지도가 높아질지도 알 수 없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분위기가 될 가능성도 높고, 막대한 대북지원금 부담으로 인한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김정일이 핵포기를 거부할 때의 국면 또한 어떤 영향을 줄지 예단하기 어렵다. 김정일 달래기에 몰두한 현 정부에 비판의 화살이 쏠릴 수도 있지만, 제재국면이 되면 반미정서가 증폭되어 여당에 유리한 분위기가 올 수도 있다.

지난 2002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비밀 핵개발이 폭로되었을 때 노무현 후보는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역공을 통해 여중생 촛불시위와 접목시키면서 오히려 득을 보았다. 물론 그때에 비해 김정일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이 확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전쟁공포 이용이 힘을 받을 수도 있다.

북핵문제에 대해 너무 앞서나가는 예단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보는 약간 보수적 접근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김정일 체제의 공격에 있어서 가변성도 많고 여러 국가들간의 복잡한 게임의 성격이 짙은 핵문제보다는 인권문제를 확고히 중심적 주제로 삼고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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