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자위수단’ LA 발언…”美 ‘盧는 북한편’ 해석”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 ‘실패한 외교(Failed Diplomacy)에는 2001년 부시 대통령 취임 후 북핵문제에 대한 비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프리처드 소장은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 및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 부시행정부 집권 1기 당시 국무부 대북협상담당 특사를 역임했다.

다음은 책을 요약·정리한 내용이다.

美, 2002년 6월말 北HEU개발 결론

나는 2002년 6월말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해 핵무기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보고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내 분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미 정보기관 모두 북한이 우라늄을 통한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위한 장비와 기술을 갖기 시작했다고 만장일치로 동의했다는 것이다.

美, 2002년 10월까지 한국에 北HEU 정보 공유 안해

북한이 1994년 제네바협정에 어긋나는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발견된 이상 우리는 미북 관계정상화 등 소위 ‘대담한 접근’을 할 수 없었다. 당시 한국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교전을 이유로 우리는 7월 1일 북한과의 만남이 적절하지 않다며 7월 10일로 예정 회담 요청을 철회했다.

그러나 당시 한미 관계가 얼마나 이상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다음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서해교전을 무시하고 예정된 7월 10일 평양에서의 회담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촉구한 것은 한국이었다.

우리는 한국정부에 한국 국민들이 북한과의 거래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라며 주의를 줬다. 서해교전 전사자들 장례식이 TV로 생방송 될 때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자 우려했던 국민들의 분노가 터졌다. 우리는 서울에 이 우려와 북한 HEU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나는 2002년 7월 북한 뉴욕 UN 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평양이 서해교전사태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하도록 제안했다. 평양은 공식적 사죄를 반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후 사과를 했다. 미국과의 장래 협상을 위한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7월말 평양은 미국의 재조정된 방문 일자를 수용했다.

北, “美 압박으로 무장해제하면 맞아 죽을 것”

2002년 10월 3일 김계관 부상을 처음 만났다.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준비한 글을 읽었다. 우리가 북한이 비밀리에 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작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 김계관은 이를 듣고 급하게 나갔다.

다음날 강석주 외교부 제1부수상을 만났다. 강석주는 북한은 그보다 더한 무기도 개발할 준비가 되어있다며 “우리는 악의 축 중 하나다. 당신은 신사다. 그것이 우리의 관계다. 우리는 신사적으로 이 문제를 토의할 수 없다. 우리가 미국의 압박으로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면 유고슬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처럼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석주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려면 우라늄 농축이든 핵무기 중 하나의 레버리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미국측 대표 8명 모두는 강석주가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DJ 포용정책 강조 부시 “이렇게 순진하다니…”

부시 대통령은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포용정책을 강조하기 시작하자 부시 대통령은 수화기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이 사람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대통령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했다. 밤 11시에 백악관으로 돌아와 이 보고서를 국가안보보좌관(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책상에 두었다. 그 보고서에는 김대중의 배경, 한국 군사독재 시절 야당 생활, ‘햇볕정책’이란 이름의 북한과의 포용정책 등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의 견해를 바꾸지 못했다.

부시, DJ 만나 북한과 협상 안할 것 밝혀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 후 치욕감을 느끼고 돌아왔다. 아주 짧은 시간만 주어졌고 강력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그의 주장은 먹히지 않았다. 파월이 국무장관으로 임명됐다는 희소식은 파월이 클린턴행정부의 일 중에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하며 문책을 받자 산산조각났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미국은 클린턴행정부가 남겨둔 북한과의 협상을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DJ, 푸틴과 ABM조약 강조’ 美 용서 못해

김대중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함께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실수였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시스템 개발을 위해 ABM 협정 폐기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 외교부 고위 관리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인2001년 3월 푸틴 대통령을 만나 공동성명으로 ABM협정이 전략적 안정의 기초라고 선포했다. 이는 부시와 김대중 간 정상회담의 운명을 결정했다. (미국은 2002년 6월 13일 ABM 협정을 공식 폐기했다)

노 대통령 2004년 연설 美 인상 찌푸리게 해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말에 행한 일련의 연설은 미국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2004년 11월 로스엔젤레스에서 그는 “북한이 핵능력은 외부공격에 대한 자위수단라고 말했다. 북한의 주장은 부인할 수 없는 합리성이 있다” 미국은 이 말을 노 대통령이 북한 편이라는 증거로 해석했다.

부시, 친분관계 때문에 고이즈미 방북 지지

2002년 8월말 미일 정상회담 얘기를 들었다.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고이즈미의 북한 방문을 지지했다.

부시 대통령은 전화로 고이즈미 총리에게 북한의 농축우라늄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일반적인 우려만 얘기했고 주일 미대사가 일본에서 자세한 내용을 해줬다.

체니, “우리는 악과 협상 않는다. 무찌른다”

2003년 8월 2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 채택에 실패한 후 중국은 다음 회담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려 했다. 그러다 12월 12일에 멈췄다. 딕 체니 부통령이 끼어든 것이다. 그는 공동성명 초안에 북핵프로그램의 ‘불가역적’ 및 ‘검증가능’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세상의 어떤 폭정과도 협상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악과 협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찔러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자유지식인선언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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