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외교-대북정책 분리해서 풀자

2.13 합의 이전에 북한 핵을 보는 입장은 처음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미국의 확고한 안전보장이 있으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이 입장은 북한 핵을 협상용으로 이해한다. 현재 한국 정부, 중국, 러시아가 이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은 핵 보유국이 목표라는 것이다. 때문에 결코 협상을 통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2.13 합의 이전 네오콘이 주도하는 미국 정부와 일본의 아베 정부가 이런 입장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 진영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2.13 합의 이후 북한 핵 문제를 보는 시각이 좀 더 분화되었다. 그 주된 원인은 미국이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강화되고 나서부터이다. 즉 미국이 대외적으로는 북한 비핵화를 천명하지만 실제 목표는 핵무기를 비롯한 핵 물질이 테러집단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선에서 그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강하게 등장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자국 안보 지키기에도 벅차

이런 정세 인식 하에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은 한국의 핵 무장을 간접적으로 주장했고 조갑제 대표는 김대중 전 주필의 바톤을 이어받아 직설적으로 핵 무장을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킬 수밖에 없게 됐다. 누구의 탓이건 오늘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살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 무엇보다 우리도 북핵에 대비한 대등한 안전장치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핵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입장과 고정된 생각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 김대중, 「‘핵의 네거리’에 남겨지는 한국」, <조선일보>,2007. 3. 12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현 고문)이 오늘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사실상 대응핵 개발을 주장했다. … 한나라당과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씨마저 겁을 집어먹은 듯이 대응핵 개발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이 분들은 국가생존차원의 결단마저 ‘너무 강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애국도 부끄럽게 생각한단 말이 아닌가. 적(敵)이 핵무장을 하고 국제사회와 동맹국이 이를 저지하지 못할 때 국가가 정당방위적 차원에서 핵무장을 하는 것은 누구한테 물어보고 할 일도 아니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 – 조갑제, 「부시가 북핵 허용하면 우리도 국가생존을 위한 정당방위 차원에서 핵무장해야」, 조갑제닷컴 2007. 3. 12

사실 냉정하게 국제 현실을 직시할 때 김대중, 조갑제 두 사람의 정세 판단, 즉 미국이 북한 핵을 사실상 용인할 것이라는 판단은 일리가 있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하여 또 다른 전쟁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정일도 이걸 잘 알기 때문에 과감하게 핵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미국은 자국의 안보 지키기에도 힘이 벅찬데 타국의 안보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상황, 즉 북한 핵의 외부 유출 방지를 당면 목표로 설정할 경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핵화 명분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제 코가 석자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핵 정책이 고정불변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워싱턴에는 아직도 김정일 정권 자체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들은 김정일이 핵을 가지고 있는 이상 언제든지 핵을 유출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북한이 계속 도발적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미국의 중동 정세가 괜찮아질 경우 미국의 북핵 정책은 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한국의 역할도 미국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체 핵 무장은 결코 묘수가 아니다.

남한이 핵을 보유한다고 해서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촉진될까?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남한은 남한대로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다. 북한은 더 많은 핵무기를 개발하려 할 것이다. 한반도, 아니 동북아 전체에 핵 냉전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핵은 핵 문제대로 악화되고 북한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오히려 지연될 것이다.

대북정책과 외교정책 목표 분리해야

최상의 대안은 대북정책의 목표와 외교정책의 목표를 분리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외교정책의 당면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을 견인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북정책은 좀 더 근본적인 목표 즉 북한의 정상 국가화로 설정되어야 한다. 즉 대북정책은 핵 자체가 아니라 핵을 가진 사람을 타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북한이 정상 국가화되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핵무기도 그 핵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협박하는 그 사람만 교체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 정책의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 김정일에 맞설 수 있는 대항 세력을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대북 정책의 목표로 비핵화를 설정하게 되면 어차피 남북 협상을 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에게 줘야 하는 대가만 커질 뿐이다.

북한 핵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미, 중, 일, 러와 공조하여 풀어가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 또 북한 핵 폐기에 대한 보상 문제도 한국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이 같이 분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외교부가 풀어야 할 몫이다.

물론 한국은 끝까지 비핵화 원칙을 견결히 고수해야 한다. 미국이 흔들린다고 한국마저 흔들릴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이 미국에 대해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의 대미 로비 역량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펼치즌 대미 외교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미국의 입장에 순응만 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신 외교부를 제외한 여타 대북 관계 부서들은 정권 교체를 배제하지 않은 북한 국가 정상화를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는 공개, 비공개 모든 방법들이 다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부도 당연히 이 목표를 위해 뛰어야 한다. 만약 현재의 통일부가 이 목표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아울러 북한의 국가 정상화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도 그 만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정상 국가화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사회에 눈을 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사람들과 접촉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 인사들과의 접촉 강화는 친김정일 세력들이 준동할 공간도 동시에 제공한다는 양면성이 있다. 때문에 보수 세력 일각에서는 북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어를 낚기 위해 이 정도 잡음은 감수해야 한다.

사실 북한과 교류를 빈번히 한 사람들일수록 반김정일 의식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북한을 가장 빈번히 왕래하는 인도주의 지원 단체들에게서 확연히 나타난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과거 운동권 출신들인데 북한을 자주 갖다오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환상을 깨어 버렸다.

때문에 그 방법이 직접 교류이든, 경협이든, 대북 방송을 통하는 것이든 북한 주민들을 외부 사회에 노출시키는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 결국 북한을 하루라도 빨리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