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본게임’ 시작…美北 충돌 불가피

북한은 14일 영변 핵시설에 대한 가동중단을 단행했다. 지난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보유 암시’ 발언으로 발발한 제2차 북핵위기 이후 약 55개월만에 원자로 스위치를 내린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5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문답 형식을 통해 “우리는 합의한 대로 중유 5만t의 첫 배분이 도착한 14일 영변 핵시설의 가동을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인원들에게 그에 대한 감시를 허용했다”며 가동중단을 확인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제 2·13 합의의 완전한 이행은 다른 5자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자기의 의무를 어떻게 이행하며 특히 미국과 일본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해소하는 실제적인 조치를 어떻게 취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각) 숀 매코맥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오늘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했다(shut down)는 통보를 받았다”며 “우리는 이 같은 진전을 환영하고 북한에 도착한 IAEA 팀에 의해 검증과 감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폐쇄에서 불능화까지 = 매코맥 대변인은 성명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지만 엄격히 말해 북한이 취한 행동은 ‘폐쇄’가 아닌 ‘가동중단’ 조치를 취한 것이다.

원자로 폐쇄를 위해선 가동중단 후에 원자로 출입문을 봉쇄한 뒤 출입문을 IAEA가 특수 제작한 철선으로 묶고 고유 번호가 부여된 표식을 부착해야 한다. 철선으로 묶는 작업을 봉인(seal)이라 한다. IAEA 전문가들이 철선 등으로 봉인장치를 하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 폐쇄가 마무리된다.

북한과 IAEA는 ▲영변 5MW 원자로 ▲핵 재처리시설 ▲연료봉 생산공장 ▲영변 50MW 원자로(건설 중단 상태) ▲태천 200MW 원자로(건설 중단) 등 5개 시설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14일 방북한 아델 톨바(Tolba) IAEA 감시검증단장을 비롯한 10명은 94년 동결 경험을 살려 15대 정도의 감시카메라 설치와 500여 개 핵시설 출입구와 장비를 봉인한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Elbaradei) 사무총장은 폐쇄에 1개월을 예상했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2~3주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쇄까지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쉽게 예상했지만, 이후 단계인 불능화(disablement) 단계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불능화’라는 용어 자체의 해석을 놓고도 북한과 6자 관련국간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6자 관련국들은 불능화에 대해 말 그대로 핵시설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원자로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외벽을 부수고 콘크리트를 부어 사실상 원자로를 폐기한다거나 원자로의 핵심 설비인 노심(爐心)과 제어봉 구동장치 등을 빼낸 뒤 공간을 특수물체로 막아버리는 방법 등이다.

불능화 개념에 대해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이 2·13 합의 직후 “황소를 거세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 불능화를 ‘영구적인 능력 상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었다. 그러나 북한은 2.13합의 직후 ‘무력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어 해석을 두고 엇갈린 주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 불능화 단계 쟁점 현안 = 폐쇄·봉인 조치 이후의 단계에서 불능화에 대한 공통의 개념 정립도 문제지만 가장 큰 난제는 ‘9·19 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돼 있는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 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신고하는 것’이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의 궁극적 목적은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서 약속한 대로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폐기”라고 강조했다.

특히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은 단지 첫번째 조치이자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플루토늄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음 조치는 감춰진 HEU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했는지 설명을 듣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완전 신고토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명길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의 불능화 등 2단게 약속을 위해선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 미국의 상응조치들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차석 대사는 특히 “영변 핵시설 폐쇄 직후 미국이 북한에 가하고 있는 경제 제재와 테러지원국 명단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두 사안을 연계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2·13 합의에는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고만 돼 있어 충돌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6자 관련국들은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와 불능화를 동시에 추진할 방침이지만 북한은 ‘先 핵프로그램 신고, 後 불능화’로 분리해 접근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불능화 단계를 여러 단계로 잘라 매 단계를 지날 때마다 대가를 요구하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의 일환이다.

즉, ‘핵프로그램 신고’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해소’를 연계하고, ‘불능화 조치’를 ‘한반도 평화체제 협정’ 등에 연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2차 북핵위기의 시발점이 된 HEU 문제에 대해 북한이 얼마나 성실하게 신고하느냐가 향후 2·13 합의의 모멘텀을 지속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임기내 해결을 목표로 ‘HEU 프로그램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의 ‘더러운(dirty)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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