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해결’의 신기루와 지뢰밭-이명박 정부 조심해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6자회담>의 돌파구가 되었던 2005년9월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2월의 ‘2.13 합의’의 특징은 참가국들이 일정한 일정표(日程表)에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로드맵’(road map)이라고 일컬어졌었다.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 ‘약속 대 약속’(word for word)이라는 북한 식 표현이 신기한 말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로드맵은 헝클어져 의미가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어느 것 하나 로드맵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6자회담>의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북한에 의하여 좌지우지(左之右之)되어 왔다.

<베이징 6자회담>은 작년 9월에 있었던 제6차 2단계 회담 이후 개점휴업(開店休業) 중이다. <6자회담>의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협상(?)의 진행은 미국 대표단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태(東亞太) 담당 차관보와 북한 대표단 단장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두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미-북 간의 이 쌍무 협상에서 최근 드디어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북한이 ‘핵 활동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했다. 분량이 60 페이지 정도인 이 ‘신고서’에는 플루토늄의 생산량, 우라늄 재고량, 핵시설 목록, 그리고 보유 핵의 사용처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에 앞서 북한은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다 상세한 플루토늄 생산 관련 자료를 미국에 수교하여 미국에서는 그 내용에 대한 검증이 진행 중에 있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이 ‘엄격한 검증(verification)’을 다짐했다는 소식을 외신이 전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일체의 경비는 미국과 한국에 부담시켰지만, 영변 소재 냉각탑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미국은 2007년의 ‘2.13 합의’에 의거한 11개의 영변(寧邊) 소재 ‘불능화’(disablement) 대상 핵시설 가운데 8개에 대한 ‘불능화’가 완료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대급부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대 적성국 교역 금지법’ 적용을 중지하는 것과 함께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거하겠다는 방침을 의회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미 행정부의 ‘테러지원국’ 지정은 앞으로 45일 이내에 의회가 법률 제정을 통해 이를 제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8월11일을 기해 소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미국은 ‘보너스’ 성격의 인도주의에 입각한 조치로 양곡(밀과 옥수수 등) 50만톤을 북한에 수송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의 전개는 당연히 또 한 차례의 ‘장미(薔薇) 빛 전망’의 신기루(蜃氣樓)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북핵 문제는 ‘불능화’의 2단계를 지나 3단계인 ‘해체(dismantlement)’의 단계로 옮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장미 빛 전망’은 국내에서도 당연히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논란이 그 하나다. “북핵 문제가 이만큼 진전을 이룩했으니 한국도 이 이상 더 소외(疎外)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선 북한에 대한 ‘식량’과 ‘비료’ 지원을 “무조건 재개하자”는 논란이 일고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 “(200년의) <6.15 선언>과 (2007년의) <10.4 선언> 및 <11.16 합의>의 이행”의 차원에서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의 ‘대북 퍼주기’를 서둘러서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명박(李明博) 정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과연, 그런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느냐”는 것이다.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의 진전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이냐는 데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북 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진전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회의론(懷疑論)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제기되는 의문은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다음의 의문은 이번에 이루어지고 있는 ‘불능화’와 ‘신고’는 철저하게 영변 소재의 대상에 한정되고 있는데 “영변 이외의 지역”에 소재하는 대상은 어찌 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이미 생산해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는 어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과연 이러한 문제들이 잘 해결되어서 이른바 2단계의 ‘불능화’로부터 3단계의 ‘해체’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사실은, 북핵 문제는 이제부터가 진짜 어려운 고비에 접어드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우선 앞에서 거론한 문제들의 원만한 해결을 통하여 북한의 ‘진정성(眞正性)’이 입증되는 것이 급선무다. 문제는 <6자회담>의 전도(前途)에는 더욱 통과하기가 어려운 ‘지뢰 밭’(mine fields)이 기다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지뢰 밭’에는 당장 예견(豫見)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6자회담>에서의 협상이 ‘불능화’에서 ‘해체’로 넘어가기에 앞서서 북한이 그 ‘대가(代價)’로 틀림없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관문(關門)이 세 개가 있는 것이다. 첫째로는 200만kw 용량의 ‘경수가압형 원자로’(LWR: Light Water Reactor)를 제공하라는 요구다. 둘째로는 북한을 ‘핵 보유국’의 하나로 대우하라는 요구다. 셋째로는 미-북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요구다.

북한의 ‘경수로’ 제공 요구는 1994년의 미-북 ‘제네바 합의’에 의거하여 북한의 신포에 건설하다가 중단된 ‘경수로’를 완공시키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요구는 현실적으로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에 복귀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체결했던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의 모든 ‘의무’를 수용하고 국제사회가 그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NPT에의 복귀는 물론 IAEA의 ‘안전조치’를 수용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 대해 요구하는 ‘핵 포기’(핵의 완벽한 ‘신고’와 완전한 ‘해체’)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및 군사적 반대급부’를 완전히 챙긴 뒤로 미루겠다는 입장이고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미국의 대북 ‘반대급부’와 북한의 ‘핵 포기’는 (NPT 복귀와 IAEA ‘안전조치‘ 수용을 포함하여), 최소한 그 최종 단계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국’ 대우 요구는 앞으로 <6자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이미 완성하여 보유 중인 핵무기”의 ‘신고’와 ‘불능화’ 및 ‘폐기’ 문제를 거론할 때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는 카드다.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북한의 ‘핵무기’ 문제를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와 인도, 파키스탄 및 이스라엘 등 ‘다른 핵 보유국’의 ‘핵무기’와 함께 ‘다자(多者)’ 간의 국제적 ‘전략무기 감축협상’의 틀 속에서 다루어 달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그 가운데서 “최소한 이스라엘과는 동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이것은 ‘아랍’ 국가들의 동정(同情)과 동조(同調)를 낚겠다는 수작이기도 한 것이다.

세 번째의 미-북 ‘평화협정’ 문제에 관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10년 동안은 김대중(金大中)ㆍ노무현(盧武鉉) 씨가 이끌던 한국의 ‘좌파’ 정권들이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여 미국에게 이를 위한 협상을 북한과 전개할 것을 강권(强勸)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한국에 새로이 등장한 이명박 정권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의 인사들로 외교ㆍ안보ㆍ대북 정책 분야의 각료 직을 메우는 믿을 수 없는 인사로 특징 지워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앞으로 이 같은 인사 운영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물러난 ‘좌파’ 정권들처럼 미-북 ‘평화협정’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와 그의 측근 및 각료들이 북한이 거론하는 미-북 ‘평화협정’의 내용을 알고 있느냐의 여부에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북 ‘평화협정’의 대전제(大前提)는 미-북 간의 ‘적대관계(敵對關係)’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은 미국과 북한이 6.25 전쟁의 ‘정전상태(停戰狀態)’를 종식시키고 ‘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체제’를 내용으로 담아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미-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① 주한미군의 철수, ②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폐기, ③ 한-미 연합사령부의 해체와 연합작전 체계의 해체 (작전계획-5027, -5029, -5030의 폐기를 포함하여), ④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중지, ⑤ 주한 유엔군 사령부의 해체 등이 ‘전제조건’을 수반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 정부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는 북한이 내놓은 이 같은 ‘전제조건’들을 과연 수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은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그의 정부의 어느 누구도 이 같은 북한의 입장을 실감(實感)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앞으로, 거의 틀림없이, 북한이 위와 같은 내용의 대미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가지고 미국과의 협상에 들어 갈 때 이명박 정부는 과연 이 같은 미-북 협상에 축복(?)을 보낼 것이냐는 것이다.

<6자회담>의 전도를 위협하는 복병(伏兵)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 다. 앞으로 북한이 미국과 중국에 제출할 ‘신고서’의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문제에는 고농축 우라늄(HEU: highly-enriched uranium) 문제가 있다. 이에 관하여 지금 어쩌면 메가톤 급의 ‘복병’이 곧 모습을 들어 낼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 북한이 이란과 협력하여 하나의 ‘합작’(joint venture)의 차원에서 ① 우라늄 고농축에 의한 ‘우라늄 원자탄’의 개발과 함께 ② 북한이 개발한 핵탄두의 무게를 북한이 다량 실전 배치하고 있는 ‘노동’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경량화(輕量化)하는 작업을 북한이 아닌 이란에서 진행 중에 있다는 정보를 미 의회도서관의 래리 닉쉬(Larry A. Niksch) 박사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하여 워싱턴에서는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로 북한과의 지금까지의 ‘허점(虛點) 투성이’ 협상을 우격다짐으로 이끌어 옴으로써 ‘김정(金正)-힐’(Kim Jong-Hill)이라는 닉네임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크리스토퍼 힐의 퇴장(退場)이 조만간(早晩間) 예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힐이 그 동안의 <6자회담>에서의 ‘공적(功績)’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무성에서의 현 직책인 ‘차관보’(assistant secretary)로부터 ‘부장관’(undersecretary)로 진급할 것을 기대했었으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6자회담>에서도 앞으로 북한의 ‘경수로’ 제공 요구와 ‘핵 보유국 대우’ 요구 등 산적(山積)한 난제(難題) 때문에 국무부를 떠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들은 <6자회담>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표면상의 유연성(柔軟性)이 노림수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닉쉬 박사의 진단(診斷)이 세 가지다. 북한의 속셈은 ① 한-미 관계를 이간시키고, ② 한국의 국론을 분열시키며, ③ 미국으로 하여금 더 이상 ‘테러지원국 명단’과 ‘대 적성국 교역 금지국가 리스트’를 이용하여 북한의 팔을 비트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북핵 해결’ 또는 ‘북핵 해결의 진전’이 무엇을 뜻해야 하는 것이냐는 문제를 심사숙고(深思熟考)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대북정책의 수립과 추진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북핵의 해결’ 또는 ‘북핵 해결의 진전’은 “북한이 과연 더 이상 ‘핵’을 ‘카드’로 사용하여 국제사회와 한국을 상대로 소위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이름의 ‘공갈ㆍ협박’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냐”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북한에게 ‘핵’을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餘地)’가 남겨져 있는 한 ‘북핵 해결’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국가정보원 그리고 청와대의 관련 비서실 등 관련자들은 작금의 <6자회담> 진행 상황에 대해 냉정ㆍ침착하게 대응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