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납치문제’ 팽팽히 맞서..北입장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7일 시작된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회의를 일시 결렬시키는 등 양국간의 첨예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일본인 납치문제가 두 차례의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라면 일본은 미해결을 주장하면서 이 문제가 우선 해결되지 않으면 국교정상화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7일 열린 첫날 회의에서 일본은 “피해자 전원이 살아있고 따라서 그들이 일본에 돌아와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납치자 전원 생존 주장과 송환을 요구했다고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날 전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정말로 사망한 사람을 살려 보내야 납치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이라면 더 이상 일본측과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이미 사망한 사람을 어떻게 살려 보내느냐고 강력히 반발, 결국 오후 회의 결렬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생존 여부를 둘러싸고 양국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북한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자국으로 납치된 일본인은 모두 13명이며 이 가운데 8명은 사망했고 생존한 5명은 2002년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납치 피해자가 모두 17명으로 북한측의 해명보다 최소한 4명이 많다는 것이며, 특히 일부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지 않으면서 납치자 재조사를 통한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일본의 납치자 전원 생존 주장에 대해 “평양선언 발표 이후 납치 문제 관련 조사활동의 경위를 알고 있는 (일본)정부 관계자들이라면 도저히 꺼낼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생억지”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조선중앙통신이 2005년 1월24일자 ‘비망록’에서 밝힌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시 비망록은 북한이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취한 조치와 그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비망록은 2002년 9월 북.일 평양선언 채택 이후부터 2004년 7월까지 납치 생존자들과 그 가족은 물론 납치 피해자가 아닌, 월북한 주한미군 젱킨스와 그의 딸들까지 일본으로 귀환시켰다고 강조했다.

특히 난관이 많기는 했지만 일본정부가 제기한 일본인 ‘안부불명자'(행불자)들의 생사여부를 재조사하고 확인하기 위해 국가적인 조치로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성의있는 조사활동을 벌였다고 비망록은 역설했다.

이에 따라 2004년 8월과 9월 베이징 접촉에 이어 11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부간 실무접촉에서 행불자들이 사망한데 대해서와 그 원인, 생존시기의 생활 등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일본측에 구체적으로 통보해주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 제시와 증인들과의 면담까지 마련하는 등 실제적으로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것.

북한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일본측 단장인 야부나카 미토지(數中三十二) 당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도 평양에서 북한과의 공식 접촉시 “지금까지 조사위원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여러가지 사건확인 자료를 받고 증인 및 관계자들과의 면회 등을 하도록 협력해준 것은 조사위의 성의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 비망록의 주장이다.

즉 북한은 일본인 납치자들의 생사여부와 생존시기의 생활 등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자료와 증인 등을 통해 일본측에 충분히 설명을 했고 일본측도 이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입장에서 무조건 납치자를 돌려보내라는 일본의 ‘막무가내식’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인 만큼 앞으로 일본에 대해서는 무시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7일 오후 실무회의를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더욱이 7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납치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현 아베 정권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북한은 일본과의 협상을 뒤로 미룬 채 미국과 협상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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