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女는 싸운다, 南女는 맞는다”

▲ 백화점에서 평양 여성

“北女는 싸운다, 南女는 맞는다.”

함께 여성학을 공부하는 남한친구가 한 학기 내내 탈북여성들을 인터뷰하고 나서, 남북한 여성들의 부부싸움 언어의 차이를 한마디로 특징지은 말이다. 페미니즘의 눈부신 역할로 여성의식이 급성장한 남한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의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남한에서 여성들이 더 당당해졌으니 부부싸움 언어에서도 그 당당함이 드러나야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여성의식이 불모의 상태에 있는 북한에서 오히려 여성들이 더 당당한 듯하다.

정말 북한 여성들의 일상은 남성에 대해 남한 여성들보다 더 당당한 것일까? 이 말을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복합적인 원리가 바로 북한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북한은 일찍부터 ‘여성해방’을 운운하며 여성들을 사회의 장(場)에 끌어들인 결과, 남녀 양성의 사회적 관계가 남한에 비해 비교적 원활한 상태에 있다. 이것은 여성의 제고된 사회적 지위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양성이 오랫동안 한마당에서 어깨 비비며 일해 오는 과정에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 결과다. 또한 성(性)에 대한 보수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데다, 사회적 성의식이 미숙하고 아직은 성이 상품화되지 않은 탓에, 존재하는 개방적 성문화가 양성의 관계를 유연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북한에 뿌리깊은 여성비하 의식 남아

그러나 가정에서 북한 여성은 그와 정반대이다. 남한에는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살림 잘하고 자녀 교육하는 것이 이상적이다’는 사고가 남아 있는데 비해, 북한은 ‘여자가 집에서 놀면 동네에서 말싸움질이나 일으키고 남편 망신시키기 일쑤이다’는 속설이 식량난 이전까지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북한 가정에서 여성은 인격체로서 의미를 상실당한 비인격적 존재이다. 북한의 가정에서 자녀교육, 가사경영과 같은 일체 가사업무는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만 전담되고 있다. 여기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북한남성 속에 존재하는 일상화된 여성비하 의식이다. 북한여성들이 양쪽 어깨를 짓누르는 사회 및 가정의 부담보다 더 헤어나기 힘들고 괴로워하는 것은 북한 남성들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여성증오의 행위와 언어폭력들 때문이다. 이는 북한사회가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의식화사업을 지금껏 염두에 두지 않아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가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에 대해 ‘당당해지도록’ 하는 요인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국가가 추구해온 장기적인 폐쇄정치 때문에 전국이 자폐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남성들의 대외활동을 무자비하게 차단시킨 데 있다.

일본의 한 소설가는 자기 소설에서 이렇게 피력하였다. “여성의 활동무대는 국내에 머물러도 크게 문제없지만 남성의 활동무대를 국내로 한정시킬 때 남성의 여성화, 아동화 현상이 일어나며 국가는 즉각 무기력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가가 남녀의 활동무대를 국내 또는 국외로 한정지어 양성을 차별화시킨 의식에는 문제가 있지만, 북한의 쇄국정책이 초래하는 인간의 의지소멸 정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둘째로,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본격화된 식량난과 동시에 활성화된 시장은 남성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다시 한번 초래하였다. 우선 시장(市場)이라는 공간을 사적(私的)인 공간으로 보는 북한의 왜곡된 시장문화가 남성들의 적극적인 시장진출을 가로막는 암초로 작용하였다. ‘시장은 사적인 것이다!’는 이상한 통념은 북한에 잔존하는 유교개념과도 그 맥을 같이 하였는데, ‘남자는 사적인 장소에 나서지 않는다’는 유교적 사고가 당시 유일한 생존무대였던 시장을 남성이 외면하도록 함으로써 남성사회의 보편적 활동의욕을 다시 한번 쇠퇴시켰다.

이때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경험과 금전이라는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양손에 쥐게 되었는데, 이것은 부엌경제를 전담한 여성들로 하여금 가정의 장에서 남편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한 근본적 원천이 되어주었다. 먹고 사는 데 여성의 역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96년 남포시 남편살해 사건

게다가 배급중단과 더불어 활성화된 북한 시장문화는 북한주민들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 위주의 사고를 실리위주의 사고로 급격히 변화시켜갔는데, 배급과 노임을 들여오지 못해 가정에서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남성들은 시장 활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악착같이 이어나가는 여성들 앞에 실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암울한 처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남성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로 곧바로 이어졌다. 고난의 행군시기 40~50대 가장들의 아사(餓死)율이 전업주부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그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감지(感知)되었다.

북한남성의 존재를 위협한 것은 체제와 아사의 위협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골치덩어리로 전락해버린 남성에 대한 여성일반의 증오심 또한 그를 부추겼다.

그 극단적 사례가 1996년 남포시에서 일어난 3명 여성의 계획적인 남편살해사건이다. 이 3명의 여성은 함께 장사하면서 친해진 사이였는데 그들 사이에 공통적인 고통이 있었다. 바로 남편문제였다. 그녀들의 남편은 하나같이 집에서 방 걸레도 안치고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면서 세대주랍시고 술과 고기, 담배를 매일 사서 바치라고 아내들을 구박해대는 원수같은 존재였다.

그녀들이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다 밤늦게 귀가해오면 아이들은 남의 집에 맡겨진 그대로였고 남편들은 친구들을 끌어들여 주패놀이에 열중하는 판이었다. 이러한 처지의 공통성이 그녀들로 하여금 남편 살해음모를 꾸미게 하였다. 그들은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세명의 여자가 장사턱을 낸다며 한 집씩 몰려가 남편을 죽이기 시작하였는데 두 번째까지 성공하고 세 번째에 실패하여 결국은 세 여성이 모두 총살당했다. 북한의 한 여성시인은 이 사건을 일명 ‘북조선 여성의 反남성 혁명’이라고 묘사하였다.

“北女는 싸운다!”는 말은 맞다. “南女는 맞는다!”, 이 말은 내가 아직 다 모른다.

北女는 싸운다. 그렇다. 그들은 지금 싸우고 있다. 그러나 남편과 싸운다는 말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인간적인 것을 비인간적이게 만드는 권력에 맞서서 그녀들은 결코 잠자코 있지 않다는 뜻이다.

최진이 前조선작가동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