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죽은 저우언라이 깨워’ 관계복원 시도

올해 3월5일로 탄생 110돌을 맞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에 대한 북중 양국의 추모열기가 관계복원 움직임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는 저우언라이가 1958년 2월14일부터 21일까지 중국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외국 방문이라고 해야 과거 소련을 몇차례 방문한 게 전부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을 대신해 저우언라이는 생전에 북한을 모두 6차례 방문했다. 특히 저우언라이에게 북한은 최다 방문국가였다.

북한은 지난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탄생 110돌을 맞아 조선중앙TV에서 특집을 내보낼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5일에는 함흥시 남화비료공장에 있는 저우언라이 동상에서 류샤오밍(劉曉明)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참가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열었다. 저우언라이의 첫 방북 당시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동상은 외국인으로서는 북한에서 유일한 동상이기도 하다.

북한의 이런 추모열기는 1998년 3월 저우언라이 탄생 100돌 당시에는 부총리 겸 외교부장을 맡고 있던 김영남 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주최한 100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하고 노동신문에 게재한 기념사에서 “우리 인민의 친근한 벗으로 조중 친선을 꽃피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한 정도에 그쳤던 것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 역시 국내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참고소식(參考消息)은 6일자 특집기사를 통해 이날 행사를 상세히 보도하고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김 주석은 1958년 저우언라이와 평양에서 회담을 갖고 “중국인민지원군이 올해 연말까지 철수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북중 관계의 기본 틀을 규정하고 있는 ‘조중우호협력친선상호조약’과 ‘조중경제문화협력협정’ 역시 김일성과 저우언라이가 얼굴을 맞대고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특히 북중 양국이 첨예하게 이해를 달리한 현안이었던 국경획정 역시 두 사람이 오랜 씨름을 벌인 끝에 마무리한 것이었다.

저우언라이는 1975년 4월 김 주석이 당시 수상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다른 외국 지도자를 맞을 때와는 달리 병상을 털고 일어나 접견실에서 정중하게 김 주석을 맞기도 했다. 당시의 일은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우의를 설명할 때 곧잘 인용되는 일화가 됐다.

아버지 김 주석과 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저우언라이의 인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저우언라이가 생전 6차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만찬이나 연회 등 석상에서 아버지의 소개로 서로 대면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공식 기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저우언라이의 사후인 1983년 6월 조선노동당 서기국 서기 자격으로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 부인 등잉차오를 만난 게 전부다.

김 위원장은 저우언라이의 동상 제작을 담당했던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해 “최고 수준의 동상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김 위원장이 1일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저우언라이의 탄생 110돌을 직접 언급하고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지시한 것은 양국 관계를 김 주석이 생존해 있을 당시의 수준으로 복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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