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라진항 사용합의 파장클 듯

북한이 중국에 두만강 하류의 라진항을 10년간 사용할 권한을 정식으로 넘긴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국제 정치, 경제적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북한의 라진항 개방은 태평양으로의 물류 ‘길’을 확보해 낙후된 동북 3성을 발전시키겠다는 중국의 경제전략적 목표와 화폐개혁 이후 도탄에 빠진 경제에 외화 실탄을 제공받겠다는 북한의 실리 추구가 맞아떨어져 이뤄진 ‘윈-윈게임’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화폐개혁 조치로 시장이 사실상 폐쇄되고 외화 부족에 따른 외부 물자조달 기근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물가는 상승하는 기현상을 겪어왔다는 점에서 라진항 개방으로 일단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진항 개방으로 중국의 투자가 본격화하면 달러와 위안화가 대거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대학원 대학교의 양무진 교수는 8일 “달러 등의 외화와 생활필수품이 절실한 북한으로선 라진항이 열리면 ‘관리가 가능한 수준에서’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현대화를 추진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개방 대상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권의 중국이라는 점에서 사상 오염을 방지하면서 ‘적절한 통제’로 라진항을 경제개발의 거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북한의 외자유치 창구인 조선대풍국제그룹의 고위관계자도 지난달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북측이 이달 중순 국가개발은행을 출범시키면서 두만강 개발계획을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 투자를 이끌어내고 차후 서방국가들로 확대해가는 경제개발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일단 북한은 라진항을 개방하고 이를 동력으로 라진과 청진, 김책, 신의주, 함흥, 원산, 남포 등으로 개발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국으로서도 라진항 개방으로 수십년간의 ‘꿈’이 실현된 만큼 이를 바탕으로 동북 3성의 상품을 태평양으로 보낼 기반시설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라진항으로 이어지는 자국내 ‘창지투(長吉圖.장춘-길림-두만강) 개방 선도구 사업을 확정한 바 있다.


라진항 개방 결정은 지난달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중, 그리고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의 방중을 통해 이어진 북.중간 정부 대 정부, 당(黨) 대 당(黨) 릴레이 회담에서 구체화됐다는 후문이다.


김 부장은 동북 3성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해당 지역 당 서기, 성장 등과 면담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장은 지난달 23일 방중해 1주일 이상 머물렀다.


중국의 끈질긴 개방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난해 11월 라진항 개방의 선도사업이 될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 개발 계획에서 돌연 탈퇴를 선언할 정도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왔으나 화폐개혁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국제 정치.경제적인 역학구도를 따져볼 때 북한의 라진항 개방으로 주변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북한의 지난해 5월 제2차 핵실험과 그에 이은 미사일 발사실험 등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 1874호의 효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는 다른 국가와 북한의 은행간 거래까지 사실상 차단하는 것이어서 ‘제재조치’로 그 효력이 막강했지만 일단 중국의 라진항에 대한 기반시설 투자로 위안화와 달러가 공급되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북한에선 화폐개혁 이후 최근 새 화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이 때문에 ‘돈맥경화’ 현상까지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위안화가 대량으로 유입되면 사실상 대체화폐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이런 북.중 경제협력 강화로 ‘활기’를 찾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견인’할 수단도 줄어들게 돼 북핵 6자회담 구도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북.중 양국간 경제협력의 밀착도가 높아지고 장기화되면 한국으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라진항 개방이 라선(라진+선봉) 개발로 확대되고 신의주 특구 공동개발로 이어지면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커질 것이고 이럴 경우 한반도 통일 구도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라진항을 중국에 10년간 내주기로 결정하기까지 내부 갈등도 상당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사용권 허가라고는 하지만 달리 해석하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빌려 일정 기간 통치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조차(租借)’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한 푼의 외화가 급하다는 사정을 우선시해 개방을 결정했고 대신 그 기간을 10년으로 묶은 정치적 결정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