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급속밀착…김정일, 중국에 명운 걸었나?

최근 김정일의 ‘친 중국’ 행보가 급속하게 빨라지고 있다.

이번 음력설을 맞아 김정일은 우둥허(武東和) 중국대사와 대사관 직원, 대안친선유리공장의 중국인들을 초청해 이례적인 환영만찬을 베풀고 예술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북-중관계가 덩샤오핑 이후의 앙금을 털어내고 협력적 동맹관계를 거의 복원한 듯하다.

기자가 남한에 와서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북중관계가 과거에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양국은 반세기 이상 전통적 ‘순치(脣齒)관계’ ‘혈맹(血盟)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두 나라 관계가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다. 중국의 실사구시적인 국가정책은 두 나라간의 갈등을 빚어 왔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한중수교 때문이었다.

개혁개방 ‘수정주의”민족이기주의’로 폄하

70년대 말까지 두 나라는 동서 진영외교로 국제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은 두 나라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 북한은 중국을 멀리했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한다며 문을 닫고 ‘자력갱생, 간고분투’를 외쳤다. 이때부터 양국관계는 냉전시대의 계급적 혈맹관계로부터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하는 상징적 동맹관계로 변질되었다.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소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배신한 ‘수정주의’ ‘민족이기주의’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을 비난하던 것처럼 싸잡아 비난하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중국이 공산당 체제의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북한이 한미동맹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대중국 문제를 파괴적으로 끌어 간다는 것은 자멸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북중관계가 완전히 깨질 경우, 김정일은 체제 붕괴를 각오해야 했다. 김정일은 중국을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였다.

한중수교 이후 북중관계 더욱 소원해져

92년 8월 한중 수교는 북한을 한층 긴장시켰다. 북한의 안전 보위기관들은 “소련과 동구라파가 좌절(붕괴)되고, 이웃나라(중국)까지 남조선 괴뢰들과 손잡아 지구상에 사회주의는 우리밖에 없다”고 경종을 울렸다.

보위기관 내부자료들은 “이웃나라(중국)에 진출한 남조선 기업들 중 90% 이상이 남조선 안기부 지부”라며 “이것은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중국)의 암묵 하에 허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위부는 북중 국경지대에 국경보위과를 새로 신설하고 감시 통제 인원들을 배치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중국제품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유언비어도 퍼뜨렸다. 중국을 방문한 주민들은 “중국은 땅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생활총화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고 부러워했다.

북한당국은 중국 방문자들을 제한하고, 중국과 연계된 사람들을 ‘40번 개’(보위기관에서 중국첩자를 지칭)로 몰아 처형했다.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막아야 한다’며 중국제 비디오, 음반 등을 단속하던 시기도 바로 이때다.

김정일은 83년 첫 중국방문이 있은 후 2000년 두 번째 중국방문이 있을 때까지 덩사오핑과 장쩌민(江澤民) 등 중국지도자들과 신년 연하장이나 건네는 데 그치고,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97년 덩샤오핑이 사망했을 때 김정일은 평양의 중국 대사관에 조문도 가지 않았다. 당시 양국 관계를 극명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김정일이 중국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 북한은 중국이 얼마 가지 못해 56개 소수민족국가로 쪼개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중국은 단 한번의 좌절도 없이 개혁개방을 잘 진척시켜 왔다.

특히 공산당 지도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것을 체제불안에 떨며 개혁개방을 단행하지 못하는 김정일에게 아주 신기하게 보였다.

2000년 5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은 2001년과 2004년, 2006년에 걸쳐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제기될 때마다 중국에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일부에서는 개혁개방수업을 받기 위해 중국을 찾는다고 하지만, 김정일에게 실제로 개혁개방을 주도할만한 경제마인드가 없다.

핵문제와 미국의 금융제재와 같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는 오직 중국뿐이라는 인식하에 보다 적극적인 대중국 외교. 경제협력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현 북한의 대외정책은 중국과의 협력 및 친선관계를 발전시켜 미국의 대북정책과 동아시아 전략에 맞서 협력관계로 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목적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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