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잠복근무를 서면 오직 모기와 풀벌레 울음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대북 라디오 방송이 유일한 친구가 돼 줬다. 근무 때가 되면 방송을 숨죽여 듣곤 했다. 젊은 날 대부분의 시간을 군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럴 바에 자유의 땅 남한으로 가자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데일리NK가 최근 인터뷰한 대북방송 청취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은 처음에는 적개심이 들기도 했지만 대북방송을 계속 청취할수록 점차 남한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생겼다고 증언했다. 대북방송 ‘마니아’였던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게 되면서 탈북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삶, 그리고 이에 반해 자유롭고 풍요로운 남한주민들의 삶 등을 비교하면서 한평생 그들이 교육 받았던 ‘지상낙원’ 북한 사회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대북방송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으로 오기 전 대북방송을 30년간 즐겨 들었다는 최옥순(62·가명) 씨는 “처음 대북방송을 들을 때 일방적 주장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멀리하기도 했지만, 북한처럼 딱딱하고 선전적인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 듣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보들이 북한 내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는 정보들인데다가 특히 김정은 로열패밀리의 이야기와 탈북자들의 소식, 세계 소식 등을 들으면서 북한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됐다”면서 “남한 사회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2011년에 탈북한 군 간부 출신 탈북자 이명기(53·가명) 씨도 “남한 방송은 일반 주민들보다 간부들이 더 많이 듣고 있다”면서 “특히 돈주들은 세계 물가의 시세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듣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씨는 특히 “신의주, 만포, 혜산 등 국경을 관할하는 제529부대 같은 경우 소좌(소령) 이상 간부들은 남한 라디오를 거의 다 듣고 있다”면서 “외부사상 유입에 철저히 통제된다고는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간부이든 평범한 주민이든 한국방송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진다”면서 “좁은 울타리에 갇혀있던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사고방식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북 라디오를 통해 북한 독재체제가 어떻게 주민들의 생각을 세뇌시켰는지를 깨달아 탈북을 감행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2000년부터 전연(前緣)지역에서 소형 라디오를 통해 대북 방송을 들었다던 김서영(가명·55) 씨는 “방송을 10년 넘게 들으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정세까지 알게 됐다”면서 “지도자가 잘못해서 북한이 못 살게 됐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당하고 살았다는 점을 견딜 수 없어 탈북을 결심했다”고 증언했다.
대북 라디오에 전하는 내용으로 친구들과 토론을 즐겼다는 강성만(가명·52) 씨는 “대북방송을 통해 우리(북한)도 다른 나라들처럼 개혁개방을 해야 잘 살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자유의 한국에서 이런 부분을 느껴보고 싶어 탈북하게 됐다”고 전했다.
탈북자들은 남한 정부에 북한 주민들이 대북방송 시청과 청취를 보다 많이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김 씨는 “한반도 통일은 남북 간 주민들의 생각의 차이를 좁혀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북 라디오, TV 방송 등을 통한 북한 주민들이 정보를 많이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도 “북한 선전문구에 ‘한편의 시가 천만 군의 적을 무찌른다’는 말이 있다”면서 “역으로 말하면 대북 방송의 일분 일초가 북한 당국에게는 총칼이 되고 2천만 주민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북한 주민들은 대북 방송을 들으면서 현재의 나와 한반도의 시대를 알아가고 통일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런 점에서 대북방송은 북한주민이 필요로 한다는 점, 통일준비에서 필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