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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밀매가 빈번하던 북중 국경지대에서 최근 밀매가 뜸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를 졸업한 탈북자 권민철(가명, 40세)씨는 “몇년 전만 해도 한 개 ‘기지’에서 10만 달러씩 벌어 국가에 바쳤는데, 요즘은 1만 달러도 못 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기지’란 외화벌이 단체 산하 지사를 의미한다.
96년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 회령에 있는 ‘1월17일 공장’에 배치된 권씨는 식량난 때 장사로 돈도 벌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돈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일본제 중고 승용차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경. 권씨는 “우리 기지는 ‘매봉’(무력성 산하)이었는데, 기지장을 포함하여 6명이었다”고 말했다.
중고차는 나진항과 청진항을 통해 받아서 두만강 쪽으로 넘겼다고 한다. 권씨네가 넘긴 중고차의 대당 가격은 2천~ 5천 달러. 구입가를 대당 5백~1천5백 달러로 보면 이윤이 나는 장사다. 중국측 대방(무역업자)들은 밀수한 차를 다시 네이멍구(內蒙古)와 헤이룽장(黑龍江)성 쪽으로 한대당 5천~1만달러에 되판다. 워낙 중국인들이 일본차에 대한 선호가 높아 ‘기름만 새지 않으면 합격’이라고 한다.
단둥(丹東)과 접한 신의주에서도 중고차 밀수는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사회안전성 7총국 산하 외화벌이 기지에서 근무한 탈북자 이성규(가명)씨는 “우리는 중고차를 배에 실어 압록강으로 날랐다”고 말했다.
최근 중고차 밀매가 둔화된 원인은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 북한선박에 대한 일본항구 정박 금지와 마약 및 무기 밀수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선박 검사강화 등 북일관계 경색 등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씨에 따르면 밀수는 주로 밤에 이뤄졌다고 한다. 먼저 압록강에 밀물이 들어오면 500t급 화물선에 중고차 30대 가량 싣고, 중국측 대방이 미리 북한 쪽에 건너와 차 상태를 확인하고 가격흥정까지 마친 다음, 중국측에 휴대폰으로 연락한다. 단둥항에 대기하는 중국인들은 전화를 받고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구간의 중국 변방수비대를 철수시키고 하선작업에 동원된다. 하선작업이 끝난 후 중국인들은 북한측에 돈을 건넨다. 이 과정에 불시에 출동하는 공안(경찰)들의 공격도 각오해야 한다.
이씨는 “중고차를 밀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북도 보위부, 도 안전국 외화벌이 부서 사람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北 정부기관이 밀수 주도…中 골치거리
북한은 90년대 초부터 중국으로 중고 승용차를 대량 밀매해왔다. 과거 북한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재일(在日) 북송교포들이었으나, 지금 신흥 부자들은 중고차 밀수와 골동품 장사로 돈 번 사람들이다. 무사히 한 대만 넘겨도 수천 달러씩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이들은 목숨을 내놓고 한다.
북한의 중고차 밀수 때문에 중국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당국은 국내 자동차시장을 보호할 목적으로 중고차 밀매를 금지하고 있다. 급증하는 중고차 밀매를 막기 위해 중국은 98년 밀수업자들을 사형까지 처한 바 있다.
북한에서 중고차 밀매매는 당, 내각, 군, 보위부, 보안서 등 정부기관에서 주도한다. 당초 중고차 수입도 중국으로 밀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석유가 없는 북한에서 중고 승용차를 대량 수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중국으로 넘길 중고차도 신의주, 의주, 회령, 온성 등 국경지대의 보위부, 보안서 마당에 주차시키고 있다. 한때 중고차 판로가 막혀 시, 군 보안서장, 보위부장들에게 한대씩 배정한 것을 빼놓고는 거의 모두 밀매됐다.
90년대 초 북중 국경지대 중고차 밀수 회사는 10개에 불과했지만, 2000년경에는 100여 개로 늘어났다. 최근 중고차밀수가 둔화됨에 따라 이들이 새로운 밀수 항목으로 무엇을 선택할지가 주목된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