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ㆍ日 유골공방 주장만 난무

북한이 지난 24일 일본 정부에 요코다 메구미의유골이 가짜라는 일본측의 감정 결과는 과학적 근거가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함에 따라 유골 감정을 둘러싼 양국의 공방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장기간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북한은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고 사건을 날조한 일본의 처사에 환멸을 느끼고있으며 이 문제를 일본 정부와 더이상 논의할 생각이 없다”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유골 감정은 일본 정부가 제3국의 공신력있는 기관에 분석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당연히 북한이 반발하고 나설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일본 정부는 유골에서 나온 골편을 나눠 일본 과학경찰연구소(과경연)와 데이쿄(帝京) 대학에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유골이 가짜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이로 인해 납치 문제로 가뜩이나 대북 강경 여론으로 들끓던 일본 열도가 다시들썩이면서 일본의 정치권에서는 미국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대북 경제제재에 착수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똑같은 샘플을 가지고 분석에 들어간 두기관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과경연에서는 DNA를 검출하지 못한 반면 데이쿄 대학에서는 미토콘드리아 분석법을 이용해 유골에서 어렵사리 DNA를 추출해 가짜임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엇갈린 결과가 나왔을 때는 결론을 내리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국내 법의학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민감한 외교적 사안일 경우에는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질 수 없도록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북한 역시 지난 1월 24일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일종의 외교 문서인 비망록을발표하고 데이쿄 대학의 유골 감정 결과에 대해서 3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북한은 △ 1천200도로 화장된 유골에서 DNA가 검출될 수 없다는 점 △ 감정서에기재된 DNA 분석 결과가 서로 모순된다는 점 △ 두 기관의 분석결과가 서로 엇갈린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날조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북한이 발표한 비망록을 검토한 이정빈 서울의대 교수는 “북한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유전자분석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전문가들도 “DNA 분석 과정에서 외부 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이 비망록을 발표하고 유골감정 결과를 강력하게 반박한 이후에 일본 정부가 보인 대응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일본 정부가 분석 결과에 그토록 확신을 갖고 있다면 유골을 감정한 연구팀이직접 북한측이 제기한 의문점을 반박하도록 하거나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실험 과정을 검증받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 정부는 “북한측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다만 북한이 희망할 경우 비망록에서 제기한 의문점에대해 양국간 실무급 접촉을 통해 직접 설명할 용의가 있다는 정도의 의사만 밝혔을뿐 여전히 과학적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두 기관에서의 분석 결과가 엇갈렸음에도 서둘러 유골이 가짜로 판정됐다고 대외에 발표하는 자신감을 보였던 작년 12월 당시 일본 정부의 태도와도 사뭇 다른 모습니다.

이와 관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6일 “조선(북한)측의 주장에 과학적 해명을 피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며 일본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유골 공방은 아직까지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을 둘러싼 북ㆍ미 양국의 팽팽한 대치와도 닮아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10월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먼저 주장한 미국에 대해 “구체적인증거를 내놓으라”고 촉구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먼저 사실을 시인할 것을 요구하면서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대북 강경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분적증거를 가지고 쟁점화를 시도한 사례가 HEU 문제”라면서 “일본도 대북 강경 여론을유지하는 것이 미사일 방어체제(MD)를 포함한 군사대국화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갖고북한의 주장에 구체적 해명을 내놓지 않고 교착 국면의 장기화를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