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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가 1997년 4월 20일 한국에 입국했다.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난 그는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친 북한 최고층 엘리트였으며 주체 사상의 실질적 창시자였다.
1997년 2월 12일 황 전 비서와 김덕홍 여광무역 사장은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에 도착,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 황 전 비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 통일하기 위해 조국의 다른 한쪽인 남한을 택했다”며 망명 이유를 밝혔다.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은 즉각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했고 중국 당국은 총영사관 인근에 급히 무장력을 배치,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북한은 수백 명의 보위부 요원들을 동원, 총영사관진입을 시도했으나 중국 정부가 무장 경찰 1200명과 장갑차를 배치해 이를 저지했다.
황 전 비서는 “한국으로 망명이 허용되면 좋고 여의치 않으면 평양에서 구한 독약으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했다”고 망명 당시를 회고했다. 3월 7일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은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고, 한국정부의 ‘1개월 이상 제3국 체류’제의가 받아들여지면서 한-중간 합의가 이뤄졌다. 황 전 비서 일행은 한 달간 필리핀에 체류한 뒤 4월 20일 서울에 도착했다.
현재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황 전 비서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 북한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