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전대협 대표의 통일운동 이야기

그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방북기들을 보아왔다. 대부분의 북한방문기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 혹은 비난으로 구성되었다. 비난과 찬양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북한 방문기가 갖는 특징은 체제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체제적인 접근은 보통 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접근은 구체적인 사실과 인물마저 추상화에 의해 재단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러할 것이 대부분이 여행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북한의 구체적인 현실과 사람을 통한 체제의 접근을 시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기존의 방북기는 짧은 체험과 표면적 인상을 체제적인 판단으로 보충하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박성희 씨의 수기에는 사람이 나온다. 전대협의 대표로 91년 방북하여 96년 범청학련 공동사무국을 자진해서 그만두기까지,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 범청학련 사무국 사업을 하기 위해 해외로 파견된 후배들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사업과 그리고 그녀가 접촉한 북한사람들에 근거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통일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문제제기 안하고 추종하는 모습때문에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 바꿔

그녀가 만난 북한인민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녀의 수기 속에 등장한다. 범청학련 북측 대표는 강건하리라는 상상과는 달리 놀기 좋아하고, 투정을 자주 부리는 철없는 청년이다. 때론 좋은 형이지만 때로는 남의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며, 통일사업엔 언제나 솔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북측의 범청학련 의장은 거만한 관료로 성과주의에 급급한, 그리고 통일보다는 자신의 직위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동유럽 사회주의의 전형적인 관료주의자로 나타난다.

그녀가 만난 북한 범청학련 간부들은 정치적으로 어리고 자주성이 없는 사업에서 번번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믿고 함께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에게 북한은 ‘진행되지도 않은 팩스 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며 자신들이 작성해두었던 합의서를 노동신문에 발표하였고, 우리를 속이고 의장단회의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 3자 합의의 원칙을 깨뜨리고 조직을 일방적으로 확대’한 비관적인 모습이었다.

이 글에는 또한 그간 국내에서 접하지 못했던 한총련의 이른바 ‘통일운동’의 비민주성과 대북 추종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총련은 범청학련 북측본부를 ‘조선학생위원회’에서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으로 확대해도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북한의 의견이라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한총련의 모습은 통일보다는 자신의 주도권과 체제옹호에 급급한 북한과 함께 통일에 대한 그녀의 꿈을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날카로운 인식으로 바꾸게 하였다.

“북의 민주화, 통일의 관건이다. 그러나 현재 북에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베를린, 그리고 3천일 만의 귀향]을 쓴 박성희 씨의 지위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다양하다. 대학생대표, 아기엄마, 가정주부, 망명자, 방북학생, 외국인, 여성 등등 3천일 동안 그녀를 따라다닌 호칭들은 한 사람이 담아내기에는 너무 다양하다. 임신을 하고서도 범청학련 공동사무국장으로 남북해외의 통일사업을 하고, 아기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학생대표로 범청학련 사업을 해왔다. 그러한 통일운동의 와중에서 가정을 꾸렸던 그녀는 독일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이며, 그것도 국제적인 난민과 망명자들의 와중에서 체류권을 따내기 위해 추운 겨울 새벽, 외국인 관청 앞에서 줄을 서야했던 한국의 망명자였다.

근 8년의 독일체류가 박성희 씨의 인식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박성희 씨의 글은 독일의 경험이 그녀에게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가를 보여준다.

“동서독 통일이 보여주듯이 분단 후유증은 최소한의 민주주의라도 보장된 사회에서 나름대로 해결, 치유해갈 수 있다. 독일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회 내부에 소수를 존중할 준비가 돼 있었고,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토론을 통해서 공유될 수 있었기 때문에 분단 후유증을 나름대로 최소화해 나아가고 있다. … 이렇듯 민주주의는 체제통합으로 파생된 분단의 문제점을 사회내부에서 최소화시킬 수 있는 기본 전제다. … 동태적, 역동적 통일론의 핵심은 민주화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북의 민주화는 통일에 관건이다. … 그러나 북에서는 민주주의가 아직 요원하다. 민간운동으로 통일의 물꼬를 트려했던 우리의 시도는 북의 관(官) 앞에서 번번이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7년간 우리가 겪었던 경험은 북에는 민간운동이 없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당의 방침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개인과 사회의 자주성은 수령과 국가, 당 앞에 철저한 피동성으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통일운동,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봐야”

[베를린, 그리고 3천일 만의 귀향]에는 박성희 씨가 경험한 독일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한다.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뿌리를 박고 사는 독일동포들의 삶과 애환, 동포 2세들, 독일유학생들, 해외운동의 단면과 실상, 독일의 동성애자, 독일의 정치와 교육 등등을 박성희 씨의 책은 담고 있다. 지구상의 저편에 존재하는 한 나라에서 그녀가 보고 느끼는 여러 삶의 모습들은 단지 편린(片鱗)으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삶의 고민으로 드러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사람과 그 시대의 운동가들이 흔히들 가졌을 민족주의를 그녀는 민족주의가 가장 혐오 받는 독일사회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민족의 관점’으로 보는 대신 ‘사람의 기준’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베를린, 그리고 3천일 만의 귀향]에서 통일과 북한에 대한 거창한 주장도, 거대한 이론도 볼 수 없다. 대신 박성희 씨가 경험한 3천일 동안의 삶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대협 대표, 방북대표로 활동한 박성희 씨의 글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통일, 북한, 전대협 그리고 한총련의 대목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다른 곳에서 보고 들을 수 없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목소리가 담겨져 있다.

통일운동가로서 아기엄마, 망명자, 가정주부의 다양한 삶을 살아야 했던 박성희 씨는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우리는 독일에서 보내온 그 모든 나날들을 굳이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젠하이데로 가던 샛길도, 베를린의 번화가 쿠담도,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도, 우리에겐 분단의 굽이였고 통일로 가기 위한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 ‘통일’이란 단어는 ‘분단’이란 단어와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 있을 듯하다. 반세기를 넘겨버린 분단의 역사에 맨몸으로 뛰어들었던 우리에게 통일은 온갖 상처로 짓무른 분단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므로 … 통일을 5분쯤 앞당기기 위해 시작한 나의 긴 여행은 그렇게 3천여 일 만에 모두 끝났다.”

The Daily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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