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는 이제 DJ의 손을 놓아야 한다

▲ 87년 평민당 대선후보로 유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djroad.com

14일 광주로 떠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6.15 행사 개막식에 2만 명이 모였다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장대비가 쏟아진 가운데 2만이 모인 정성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 숫자는 주최측에서 보도 요청한 것이고, 사실은 5천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처음 2만 명이 모였다는 소식에 직감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DJ)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DJ는 광주시민 5천명 앞에서 ‘평양 출정식’을 가졌다. 그는 비장한 어조로 독재자 김정일과 민족의 미래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기가 막힌다. 지난 수십년간 광주시민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DJ가 이제 평양가는 길에 광주시민을 들러리로 세운 것이다.

80년대 학창시절의 기억

80년대 초반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에 자주 올랐다. 산에 올라서 전두환을 실컷 욕하고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쉬어 내려왔다. 오는 길에 증심사라는 절에 들러 문을 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종교인들이 정권에 아부나 한다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시민들의 행패를 당하던 이 절의 스님은 나중에 유명한 재야 종교인이 됐다.

초등학교 시절 광주로 전학온 나는 친구들에게서 가끔 산에서 탄피를 주웠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말도 들었다. 작은 아버지는 성당에서 ‘광주사태 비디오를 틀어준다’며 작은 어머니의 만류에도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김성한 선수가 홈런을 치면 왜 관중들이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는지 알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도 광주는 시끄러웠다. 버스를 타면 기사 아저씨들은 “어제 전남대 학생들이 용봉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면서 무용담을 얘기했다. 함께 탄 동료 아저씨는 “전대보다 조대가 더 화끈하다”면서 노선 경쟁까지 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던 삼촌은 한 달에 한 번씩 나와 형을 앉혀놓고 시국강연을 했다. 그리고 광주를 김대중과 연결시켰다. 다들 그랬다. DJ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5.18이 되면 학교는 모든 수업이 5.18 ‘계기수업’을 했다.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선생님들의 분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리고 1987년 대선이 되자 나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3번(평화민주당 김대중)을 외치고 다녔다. 아래층에 세 들어 사는 학동이 어머니는 ‘애들이 더 난리’라면서도 싫지 않은 인상을 쓰셨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DJ와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 출신이라며 선배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는 ‘범민주 단일후보 김대중’을 외치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전대협 출범식을 잠실 주경기장에서 하고, 북한 대학생들과 술도 진탕 먹을 줄 알았다. DJ가 좀 부족해도 자주민주통일을 위해서는 그와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햇볕’은 실패한 가설, 국민심판은 이미 내려져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됐다. 역시 호남은 90% 이상의 지지를 보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노벨상까지 받았다. 김정일에게 정상회담 대가로 5억 달러를 송금해 특검까지 받았지만 그가 바꿔 놓은 한반도의 희한한 정세는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DJ 시절 북한을 따뜻하게 보살핀 결과 우리는 금강산에 갈 수 있게 됐고, 개성공단에 공장을 짓고 북한 노동자를 부릴 수 있게 됐다. 매년 수십만 톤의 쌀과 비료를 보내 북한을 먹여 살렸고, 남북을 오가며 민족공동행사를 가졌다. 이산가족 상봉 횟수도 크게 늘었다. 광주시민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DJ가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10년 가까이 된 지금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했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인권유린 자료들이 공개되고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총회를 통과했다. DJ와 노무현 정부는 이 과정에 철저히 침묵을 지켰다. 오히려 핵 보유 선언에도 대북지원과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우리의 인도적 지원이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군대로 간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경협 과정에서 북한 당국의 오만불손한 자세가 계속되자 국민여론은 악화됐다. 김정일은 남한의 달러에만 관심을 가질뿐 개혁개방으로 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다. 그 사이 한미동맹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맥아더 동상은 철거위기에 몰렸다. 어느 대학교수는 미국 때문에 6.25 희생자가 늘었다고 떠들고, 평택 반미시위대는 군인들을 두들겨 팼다.

우리가 도와주면 북한이 변한다는 햇볕이 결국 실패한 가설임이 밝혀지자 민심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5. 31 지방선거의 참패는 햇볕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었다.

민주주의는 광주의 친구, 독재는 광주의 적

그러나 지금 남북정권은 6.15 행사를 광주에서 갖고 5.18묘역을 참배하며 소위 ‘민족공조’ 불씨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DJ는 광주를 찾아 김정일과 민족의 장래를 놓고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래, 김정일이 지금까지 남한에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핵을 붙들고 미사일까지 쏜다고 위협하고 있을까. ‘민족의 지도자’ 이름 석자를 남기겠다는 욕심이 너무 큰 탓일까. 균형감각을 상실해도 한참 도를 넘은 DJ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국민의 민심을 ‘사대 매국정당의 득세’로 몰아가는 북측 대표단을 광주시민이 왜 환영해야 하는가. 꺼져가는 햇볕을 붙잡고 김정일과 공조하겠다는 DJ를 왜 감싸야 하는가. 그리고 성스러운 5.18 민주화 운동을 반미투쟁에 활용하려는 김정일의 의도를 왜 광주시민이 묵과해야 하는가.

DJ는 북측이 ‘5.18은 반미투쟁’이라고 버젓히 말하게 만들어놓은 장본인이다. 남북정권은 지금 독재에 의로운 투쟁을 전개한 광주항쟁을 반미로 덧칠해 정치적 효과를 보려 한다. 만약, 이러한 사태를 DJ가 방조하고 있다면 광주는 이제 그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광주와 연결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지금 6.15 광주행사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남북정권간의 ‘반외세 민족공조’ 구축이다. DJ의 행보는 광주시민 전체를 ‘반미 자주, 민족공조’를 위한 들러리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 광주시민들은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깨비 같은 소동에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민족공조라는 허울과 지역정서를 부추켜 광주를 반미친북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민주화 완장을 차고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보여준 무능과 어리석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똑똑히 보았다. 80년 광주의 한을 딛고 모든 것을 이룬 한 늙은 정치인의 어리석은 노욕까지 광주시민이 보살필 필요는 없다.

이제 광주는 80년 광주항쟁의 정신으로 한반도 전역에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람은 광주시민의 친구이지만, 독재자를 비호하는 세력은 광주시민의 적이 된다. 이제 광주는 김대중을 놓고, 김정일 수령독재에 신음하는 우리의 북한형제들과 손 잡을 때가 됐다.

광주시민은 ‘친김정일 들러리’가 될 수 없다. 아니, 결코 되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광주가 어떤 곳이던가. 광주는 김정일과 손잡은 DJ의 손을 이제 놓아야 한다.

신주현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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