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마 이 노래는 남북을 통틀어 7천만 겨레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가 아닐까 싶다. 그 만큼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통일이란 두 단어가 가진 호소력은 굉장히 컸다.
물론 여기서 통일이란 남북 사이에 자유롭게 왕래하는 수준의 관계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통일이란 그것이 단일 헌법이든 연방 헌법이든 남과 북이 하나의 헌법 체계로 들어오며, 하나의 중앙 정부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어떤 통일이든 통일은 절대 선(善)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소련, 동구가 무너지고 북한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뒤로부터 통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인식의 변화는 남과 북 모두에서 진행되었다.
우선 남한에서는 90년대 이미 동서독 통일의 부작용을 목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중반 북한의 대아사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극단적인 후진 체제는 남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태도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남북 통일은 남한 국민들에게 파라다이스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부담만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나아가 탈북자의 지속적인 남한 사회로의 유입을 통해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로 인해 남한 사람들 중에 통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 통일연구소(소장 박명규)는 2007년 7월 4∼20일 전국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2007 통일의식조사’를 한 결과 ‘남북한 통일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4.4%가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20대는 21.2%만이 “매우 필요하다”고 답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는 정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2005년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문제 국민여론조사’에서 통일에 대해 전체 응답이 전체 49.2%, 20대 응답자의 44%가 ‘매우 필요하다’고 답한 것과 비교해 각각 4.8%포인트, 22.8%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통일을 원할까?
통일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로의 전환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진행되었다. 원래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줄곧 통일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북한 당국은 통일은 절대 선이라는 관념을 아주 어릴 때부터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주었다. 이러한 북한의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는 한국전쟁 이후 6,70년대까지 북한의 국력이 남한보다 앞서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사정은 급격히 바뀌었다. 80년대 이후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때 북한은 남한은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사회라고 거짓선전했지만 이제는 북한이 실제로 그런 사회로 변화해 버렸다. 때문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통일을 결코 바라지 않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통일을 위해 남북 교류를 강화하게 되면 남한의 발전상이 북한에 알려지게 되고 이는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일 정권은 남북 교류에도 소극적이며 어떻게든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이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 북한은 연방제 통일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지만 지금은 연방제 통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 된 것이다. 사실상 북한정권은 反통일적 입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先 북한인권 개선-後 통일’ 전략 짜야
아무리 남한이 통일을 원하더라도 현재의 김정일 독재체제가 유지되는 한 남북 통일은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김정일이 자발적으로 민주주의를 수용하든, 아니면 김정일 독대체재가 새로운 민주 정권으로 교체되어야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체제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적 정권이 되는 것이 통일의 전제 조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북한에 민주-인권 체제가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독일식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현재의 남북한 사회, 문화, 경제적 격차는 독일통일 당시의 동서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2006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1인당 GDP가 400$ 정도 된다고 추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북한의 경제규모는 한국의 제주도 경제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에 민주체제가 수립되더라도 독일식 통일이 아니라 중국-홍콩과 같은 1국가 2체제 방식의 연방제가 더 적합할 것이다. 궁극적 통일은 이 장기적인 연방제 과정을 거쳐 남북한의 격차가 상당히 줄어 들었을 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와 민간에서 대북 전략을 수립할 때도 통일보다는 북한의 인권개선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즉 先 북한인권 개선, 後 단계적 통일이라는 로드맵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기존의 통일 우선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먼저 정부의 통일관련 기구들, 통일부, 민주평통, 통일교육원 등은 그 1차 목표가 통일에 있지 않고 통일의 선결 조건을 실현하는 것에 있음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주의 수준 고양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민간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민간단체들은 지금까지의 통일운동과 남북통일 논의를 일단 유보해야 한다. 물론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진행해야 하겠지만 이런 교류, 협력 사업의 목표는 남북통일이 아니라 북한의 민주주의 고양과 인권 개선 지원에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전제 조건이 선결될 때에만 남북 통일 논의가 가능함을 북한 당국과 주민들에게 분명히 인지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