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軍시대 ‘무릉도원’에 늙은 홀아비 노래만 넘쳐나

▲1999년 8월 12일 김정일의 대홍단군 현지지도를 보도한 노동신문. 이 신문에는 김정일이 감자연구소 시험포전과 홍암분장 밀보리밭을 방문한 사진이 게재됐다.

북한 당국이 ‘선군시대 무릉도원’이라고 선전해온 양강도 대홍단군에서 생활하는 제대군인들과 삼지연군 포태농장 제대군인들 사이에서 집 떠나 아내를 그리워 하며 ‘아리랑 고개’가 대유행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이 25일 전해왔다.

이 제대군인들은 감자 작업장에서는 물론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즐기는 장소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 심지어 집단으로 춤을 출 때도 이 노래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아리랑 고개’라는 노래는 지난 2000년 초부터 양강도 대홍단군과 삼지연군 포태농장에 집단배치(무리배치)된 제대군인들 속에서 불리기 시작했다. 원곡을 개사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출처는 불분명하다. 구전되는 과정에서 여러 파생곡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노래는 ‘꿈을 안고 감자농장을 찾아왔다 속절없이 떠나간 아내’를 그리며 생활고에 지쳐 목숨을 끊는 한 제대군인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부르는 형식 또한 한사람이 한소절을 선창하면 집단으로 따라 뒷소절을 부르는 독특한 유형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아리랑 고개’가 유행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지난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양강도 대홍단군을 ‘감자왕국’으로 만든다면서 대홍단군과 삼지연군에 각각 1천명의 제대군인들을 무리로 강제 배치했다.

북한 주민들이 시청하는 TV채널 ‘조선중앙 텔레비젼(조선중앙TV)’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3일까지 ‘선군시대 무릉도원을 가꾸어 가는 대홍단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3부작 특집프로를 방영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은 대홍단군 제대군인들을 크게 소개하고 이들에게 시집오는 여성들은 ‘애국적 소행’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해 도시 처녀들이 이들을 따라 농촌에 뿌리 내리도록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 당국의 선전에 호응해 당시 개성 제사공장 초급단체(청년동맹) 여성들이 집단으로 대홍단에 지원했다. 심지어 평양에 있는 방직공장 처녀들까지 이곳에 몰려들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을 위해 1999년 여름에 수백명 합동결혼식을 치르는 ‘쇼’까지 진행했다.

김정일이 이 시기에 대홍단 제대군인의 집을 직접 방문, 아이의 이름을 ‘홍단’이라고 지어 준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하루종일 농장에서 일하고 전기도 안 오는 집에서 감자만 먹고 살아야 하는 제대군인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김정일은 외국에서는 감자만 먹고도 잘 산다고 했지만, 조선(북한) 사람들이 1년 내내 감자만으로 버터기는 쉽지 않았다.

상황이 계속 어려워지자 제대군인에게 시집왔던 도시처녀들이 불평불만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리배치는 김정일의 지시이기 때문에 함부로 떠날 수도 없었다. 남자들이 떠나기 힘들어하자 여자들은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혼에 응한 남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여자를 구경하기도 힘든 곳에서 이혼하면 아이는 누가 키울 것이며 살림은 누가 할지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여자들이 하나 둘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지금 대홍단 감자농장과 삼지연 포태 감자농장에는 이렇게 달아난 도시여성들 때문에 홀아비로 지내는 제대군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선군시대 무릉도원’이라 요란히 떠드는 대홍단군에서는 지금도 제대군인들이 모여 ‘아리랑 고개’를 부르며 김정일의 감사농사 혁명의 공허함과 그 속에서 희생된 자신들의 삶을 위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