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학자, “6.25전쟁 북한의 군사공격으로 발발”

중국 지도부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김일성(金日成)의 남침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과 장샤오밍(張小明) 교수는 9일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가 주최하는 국제학술세미나에 앞서 8일 미리 배포한 논문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대규모 군사공격을 개시하면서 발발했다”면서 그 같이 주장했다.

장 교수는 “중국 지도부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 김일성이 남한에 군사적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고 있었다”며 “당시 소련 최고지도자인 스탈린이 재가를 한 이후 (중국도) 마지못해 참전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자세한 전쟁 일정을 알지는 못했으며 김일성이 무력으로 그의 조국을 해방하겠다는 계획을 반대하기가 불가능해 북한의 전쟁계획을 마지못해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이 개입하자 중국 지도부는 참전 여부를 두고 상당한 고민을 했다면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난 뒤에야 참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장 교수는 “중국이 한국전쟁 공모에 가담했는 지는 현재로선 정확하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밀 서류들이 더 많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사카다 야스오 일본 간다 외국어대 교수는 “휴전협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남한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휴전 이전에 상호안보협정을 체결해줄 것을 미측에 요구했으나 당시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거부했다”며 “그러나 휴전을 중단하기 위해 단독 행동을 취하겠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협박은 이런 미국의 입장을 바꿔 협상을 시작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미측은 협상을 하면서도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됐을 때 한국이 중립국 지위를 원하는 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면서 “그렇지만 미국은 1953년말께 중립국은 타당성이 없고 동맹국으로 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사카다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주둔을 허락한다는 방위조약 조항(3항)은 애초 미측 초안에 없었으나 한국의 끈질긴 주장으로 포함됐다”며 “한미 동맹관계의 출발은 태동기부터 지역적 동맹이었으며 포괄적 지역안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는 9일 오전 9시20분 부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홀에서 ’6.25전쟁과 동북아 군사관계의 변화’를 주제로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학자들이 참가하는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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