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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자회담 창구로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 활용하는 전통적 ‘양다리 외교’를 추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13일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주일 러시아 대사는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핵 6자회담이 내달 초순에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회담이 2년 또는 1년, 반년마다 개최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회담이 느리게 진행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으며 갈등의 위협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 “6자회담 과정이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슈코프 대사는 이어 “북한이 핵개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국이 (외국의) 군사적 공격 또는 정치적 압박으로 주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면서, “북한에게 스스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 강제로 포기토록 하겠다고 위협하는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6자회담 개최 일정이나 의제 등은 주로 중국 채널을 이용해왔다. 회담복귀 일정을 중국과 협의하고 중국이 의장국으로서 관련국에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보다 러시아가 6자회담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언급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과거에 중-소를 오가는 북한의 양다리 외교가 부활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특히 중국이 미국의 금융제재에 협조하고 유엔대북제재에도 동참하면서 북한의 배신감이 더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8일(현지시간) 잠시 베이징을 거쳤다가 모스크바로 간 이후 이같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강 부상이 신병 치료차 러시아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은 이날 러시아 외무부측과 향후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강 부상은 8일 김정일 위원장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콘스탄틴 풀리콥스키 러시아 환경기술 원자력감독처 장관을 만난 것으로 14일 한국언론이 보도했다.
풀리콥스키 장관은 과거 러시아 극동관구 대통령전권대표로 2001년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을 책임지고 수행했던 인물이다. 이에 따라 강 부상의 러시아 방문이 김정일의 방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풀리콥스키 장관을 면담한 것은 단순히 양국의 친선관계나 우의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김정일의 방러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성사될 경우 북한 외교의 중심축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쏠리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경제·외교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커서 이러한 ‘양다리’ 외교가 ‘대중(對中) 시위용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명지대 북한학과 이지수 교수는 “북한과 러시아의 빈번한 접촉이 단순히 밀월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외교노력으로만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과거에도 정세변화가 있거나 양국간 현안문제가 발생하면 관리들이 짧은 시간에 빈번히 오고 갔던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설령 북한이 러시아에 기대어 북핵 위기를 풀어가려고 한다해도 러시아는 등을 두드리기보다는 복잡한 계산을 하면서 북한을 이용할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했다.
현재 북한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에너지다. 북한은 원유의 90% 정도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북한에 원유공급을 중단한다면 김정일 체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된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러시아를 활용, 에너지 수급을 중-러 양쪽으로 분산하는 게 안전하다.
특히 유엔 대북제재가 시작되면서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할 경우 김정일은 중국에 운명을 내맡기게 되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김정일은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둘러싸고 과거보다 러시아를 더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