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이 예상 외로 빨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것을 두고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월 미사일 시험 발사 후 평양을 찾은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를 만나주지 않은 것과 비교할 때 도착 하루 뒤 면담을 허락한 것은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후이량위 부총리는 당시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 45돌 기념행사 참석차 방북한 것이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야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사실상의 특사 자격이었다.
김 위원장이 선뜻 탕 특사를 맞은 배경에는 그가 들고 온 보따리 안에 든 내용물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쓴 적이 없는 핵실험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던진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이 어떤 제안을 내놓았고 중국은 어떤 중재안을 가져왔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중국이 중재하는 북미 양자대화 제안이나 금융제재 잠정 중단과 같은 미국의 양보안이 제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탕 특사는 방북에 앞서 미국을 방문, 조지 부시 대통령과 만나 후 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전한 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 관계자들과 북핵 사태에 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당연히 일정한 합의가 도출됐을 것이고 그 내용이 특사인 탕 국무위원을 통해 북한에 전해지는 단계를 밟은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탕 특사와 마주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 채널을 여는 진전은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북한도 핵실험 이후 다음 단계의 조치를 언급하면서도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둔 채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쌍방이 한반도 정세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낙관적인 분석과 달리 북한과 중국이 모두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급히 만나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중국으로서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어서 그에 앞서 특사외교를 통한 성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욕심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라이스 장관이 중국과 논의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절박감이 일정 부분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북한을 설득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태도 변화를 촉구해야 했고 북한도 미국과의 무한대결로 치닫기보다는 협상의 계기를 찾기 위해 특사 방문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탕 특사의 김 위원장 면담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20일로 예정된 라이스 장관의 중국 방문에서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