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탈북여성 증언 ‘왕칭살인사건’ 해결

지난 6월 18일 밤, 지린성(吉林省) 왕칭(汪淸)현에서는 중국 전역을 놀라게 했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왕칭현의 갑부로 불리는 건축회사 간부 채관석씨의 집에 강도가 들어 채관석씨와 그의 아내, 아들(22세), 딸(16세) 등 일가족 4명을 칼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중국에서 ‘6.18汪淸特大殺人事件’으로 불린 이 사건은 지린성 성장, 연변조선족자치주 당 서기, 지린성 공안청장(경찰청장) 등의 지휘 아래 1백80여 명의 공안(경찰)이 투입되어 사건 발생 40일만인 지난달 말 용의자 전원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4명(남성 3명, 여성 1명) 중 2명은 부부였으며, 용의자 한 명은 17세의 미성년자로 확인되어 중국사회를 경악케 했다. 이들은 금품약탈을 목적으로 채관석씨의 집에 침입하여 저항하는 일가족을 현장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식모 탈북여성 고(高)씨, 결정적 증언으로 전원체포

용의자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는 채관석씨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던 고(高)모씨의 증언에서 나왔다.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고씨는 40대 탈북여성으로 밝혀졌다.

평소 채씨 가족과 친하게 지낸 조선족 임모씨(43.왕칭거주)는 “작년 봄에 고씨가 채관석씨 집에 식모로 들어왔다”며 “채씨는 고씨가 집안일을 잘한다며 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가족처럼 지냈다”고 전했다.

사건 당일 고씨는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고도 용의자 1명의 손등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저항했다고 한다. 사건 직후 과다출혈로 3일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지린성 공안요원들은 용의자 손등의 흉터와 고모씨가 증언했던 인상착의를 근거로 용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사건 용의자 왕모씨는 광동성에서, 전모씨 부부는 산동성에서, 손모씨는 왕청현의 자기 집에서 체포되어 전원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지린성 공안당국은 초동수사 과정에서 고씨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했다. 고씨가 다른 탈북자들을 끌여 들여 범죄를 모의한 것이 아닌지 집중추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재중 탈북자, 잠재적 범죄자로 몰려

연변지역에서 간혹 발생하는 강도, 살인사건의 경우 중국 공안당국은 우선 탈북자들을 일차 용의자 범주에 포함시킨다. 이는 탈북자들의 범죄율이 중국현지인들에 비해서 높기 때문이 아니다. 강제송환을 두려워하는 탈북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라 하더라도 무조건 사건현장에서 도망친다. 때문에 탈북자들이 무고한 혐의를 뒤집어 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공안 당국은 범죄증거나 용의자가 불분명할 경우 일차적으로 탈북자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불심검문을 강화하게 된다. 연변사람들은 “연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탈북자 수 십 명이 북한으로 끌려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범죄용의자를 잡기 위한 검문이 강화되면 애꿎은 탈북자들만 걸려든다는 뜻이다.

만약 고씨가 과다출혈로 사건현장에서 의식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분명히 현장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사건은 ‘탈북자 식모가 주도한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처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고씨는 오갈 곳 없던 자신을 가족처럼 받아줬던 채씨 일가족에 대해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은 셈이 됐다. 중국공안의 보호속에 이제는 건강도 회복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재판이 끝나게 되면 고씨는 북한으로 송환될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으로서 은혜를 갚고, 법적으로 무죄라는 사실도 증명되었지만, 북한의 차가운 수용소 쇠창살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연변에서는 고씨를 위해 ‘구명운동본부’조차 만들 수 없는 NGO 활동가들은 이마에 주름만 깊어지고 있다.

중국 왕칭(汪淸)=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