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북한 김정일의 ‘조건부 6자회담 수용 입장’에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권력 서열 3위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2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무상원조와 각종 경제협약을 약속한 대가로는 작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원 총리를 수행해 방북한 양제츠 외교부장은 6일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원 총리의 방북은 풍성하고도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면서 특히 북중 우호관계 심화와 북핵 문제의 진전 분야에서 성과가 컸다고 밝혔다.
양 부장은 북핵 문제와 관련,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진하는 데 적극적인 진전을 가져왔다”면서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이번에도 중요하고 책임있는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양 부장은 “원 총리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공통적인 인식이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면서 “북한의 지도자들과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해 중요하고도 적극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우리는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통해 이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정일이 원 총리와 회담에서 밝힌 “북미 양자회담의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북핵문제의 내용적 진전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김정일의 발언은 미북회담을 사실상의 협상으로 보고 회담의 성과에 따라 6자회담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양자회담은 6자회담으로 가는 중간 다리 역할 정도로 보고 있다. 양국 입장대로라면 북한이 예상하는 성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양자대화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6자회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중국이 밝힌 것처럼 핵문제에서 중대한 진전이 되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단계다.
중국이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으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대북 영향력의 확인이다.
미북 양자대화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한미 등이 일괄타결식 ‘그랜드 바겐’을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북핵협상에서 누려왔던 ‘중재자’ 역할을 누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북한의 극진한 대접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중국 전문가인 외교안보연구원 최명해 교수는 “중국도 이번 방북결과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다”면서 “중국 현지에서도 오피니언 리더들의 칼럼을 통해 이번 방북에 대한 평가가 나오지 않고 있는 점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이번 원 총리 방북의 결과가 성과적인 경우 전문가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르겠지만, 평가가 없다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성과를 얻은 것 같이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관중(관련국)을 의식한 행동에 불과하다”며 “대북 견인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미국과 한국에 비해 북한을 견인할 수 있는 노력이 없었던 중국은 북중간 우호 및 신뢰관계를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전 단계로 복원하다는 점”이라며 “이번 원 총리의 방북을 통해 신뢰관계 복원함으로써 향후 중국의 주도로 북한과 대화의 판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또 “이번 방북에 중국이 거대한 선물을 북한에 제공한 것 같이 보도되고 있지만, 2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이번 원 총리 방북 지원은 중국이 한반도 안정기금으로 쿼터로 책정하고 있는 예산으로 2000년대 초기 중국이 대북 식량·에너지로 1억불 정도를 지원했던 것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라며 이번 지원은 예년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이번 원 총리 일행의 중국 방북단을 통해 북 핵협상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중국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이라는 실리를 챙기는 데 그쳤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