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6자회담 당사국들이 북핵 해결 방안을 놓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ARF 이후 6자회담 조기 재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원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박의춘 북한 외무상과의 양자대화를 마친 뒤 “중국은 유관국(6자회담 참가국)들이 서로 각자 행동에 나서고 조건을 만들어 한반도 문제가 빨리 대화를 통한 해결의 궤도로 다시 돌아가길 기대한다”며 사실상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재개 의지를 밝혔다.
특히 왕 부장은 “중국 역시 의장국으로서 중재하고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조건 없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에 불러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진전시키자는 입장이다.
박 외무상은 왕 부장과의 양자대화에서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해 중국의 이해를 구하고 국제사회 고립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6자회담의 조건 없는 재개 필요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의도한 6자회담은 비핵화를 전제했다고 보기 힘들다.
북한은 6자회담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도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한 핵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중재하는 중국의 입맛에 맞추면서 한·미·중 3국의 비핵화 공조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일 ARF 회의 기조연설에서 한·미 등의 주장을 수용하는 대신, 평화적 핵개발 권리를 주장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반면 한·미·일 3국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3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2·29합의+α’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한·미·일은 1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 악순환 단절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 공동성명 등 북한의 국제의무 준수 등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이 긴요하다는 점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ARF 참석 계기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북과 북중, 미중 그리고 나머지 세계와의 관계 정상화 가능성은 비핵화로 향하는 진지한 조치들의 끝에 위치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미·일과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는 견해를 같이 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6자회담 재개를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한·미·일과 북한 어느 한쪽이 양보하기 힘든 국면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 입장을 보였지만, 이후 6자회담 조기 재개쪽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한·미·일 3국의 입장이 ‘2·29합의+α’가 충족돼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이른 시일 내에 6자회담이 재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기존 입장을 굽히고 들어와야 재개가 가능한데 그럴 가능성은 낮다”면서 “ARF를 계기로 6자회담 재개에 대한 희망 섞인 전망도 나왔지만, 당사국 간의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차원이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