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김정은의 방중은 결국 북한으로선 기댈 곳이 중국밖에 없다는 걸 천하에 고백한 셈이다. 중국으로선 흡족하기 그지없었을 터다. 미국과 전세계를 향해 동북아 안정은 중국 손에 있다는 걸 북한이 알아서 보여줬으니 말이다.
북중의 속셈은 무엇인가? 6자회담으로의 회귀다. 김은 자신의 발언으로 희망사항을 분명히 했다.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오늘자 뉴욕타임즈(NYT)는 이 문단을 이렇게 번역했다. take phased, synchronized measures to achieve peace).”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 기시감(déjà vu)이 짙다. 돌직구 트럼프를 만나 꼼짝없이 몰리게 된 일도양단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마지못해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6자회담이란 ‘틀’은 그럴듯했으나 북한을 죌 수 없다는 결정적 허점(loophole)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 결과 북한은 시간 벌기에 성공했다.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프레임’이 자체적 결함으로 북한이 그 틀의 범위 이하로는 방해 받지 않는 자율성을 누린 셈이다.
전방위로 조여오는 대북제재와 거침없는 트럼프의 행보에 김정은으로선 우회로를 만들어줄 강력한 당장의 후견인이 필요한데 중국으로서도 대미(對美) 레버리지(지렛대)를 살리기 위해선 북한만한 호재도 없는, 이처럼 상호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졌으니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간 셈이다.
중국을 등에 업은 북한이 미국에 내밀 카드는 더 공고해졌다. 김정은이 요구할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길 위에 뿌려질 ‘진달래꽃’은 경제지원은 물론이고 북미 평화협정, 한미군사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체제안전보장, 인권문제 불간섭 등 거의 모든 카드에 대해 중국과 이해관계를 일치했다는 ‘공증서’를 얻은 거니 말이다.
이것들은 미국이 요구할 비핵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중단 요구에 북한이 대응할 단계별 전제 또는 동시이행의 조건으로 방패역할을 할 게다. 협상이란 이 지루한 게임을 어떻게 마무리하냐는 인내력 싸움이니 적어도 시간이 필요한 북한으로선 숨통을 트일 기회를 중국에게서 먼저 확인 받은 것이다.
다만 문 정부가 앞으로 뭘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의 제안에 대해 미국이 받아들일 것을 적극적으로 읍소하는 ‘마중물’이 기꺼이 되려고 애쓸 것이다. 이제 북미회담은, 성사만 된다면, 미중회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김정은이 시진핑의 대리인을 자처한 것이니 말이다.
아직까지 미국의 공식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발 빠르게 장문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렸으나 ‘영변의 핵 공장이 가동했고 그것은 회담을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는 메인 기사 아래에 붙였을 뿐이다.
참으로 상투적인 표현이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는 뻔한 말이 당장은 가장 어울릴 성 싶다.